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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Sep 27. 2020

크로#20.스플3:디오클레티안 궁,그리고 길 위의 약속

북문의  그레고리주교 동상과 성 안에 깃든 현지인의 삶

오래된 건물과 닳아 반들거리는 포석 따라 이어지는 골목, 골목에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가득 품고 있는 궁전 안은

옛 귀족들의 집을 개조하여 만든 박물관이나 성당 등이 보물 찾기처럼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1700년 전 궁전은 사실 구체적인 흔적이 많지 않지만

몇 세기에 걸쳐서 계속 변모해온 성터는

단애의 지층처럼, 지나온 역사를 촘촘하게 간직하고 있음을 느낀다.

궁전터의 모형
점선이 스플리트 유네스코 지정 지역,  검은 사각형이 궁전 (Split시 관광 공식홈피))

< 성 안은 여전히 현지인들의 생활 터전  >


대성당 측면
황제의 연회가 열리던 트리쿨리니움 터
골목길


동문 (Silver gate)

성 도미니우스 성당 앞 Peristil 광장에서 우측으로 꺾으면 동문이 나온다.  

석양을 받고 서있는 실버게이트는 예전 성벽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 관광객들 포커스 집중다. 성 밖은 노천시장이 열려있다.

1952년 이전 만해도 이 동문은 닫혀있었고, 문에 덧대어 지어진 건축물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 철거된 상태라고 한다. 성문 밖 바로 앞에 성 도미닉 성당이 있다.

문 밖  계단 위 건물이 성 도미닉 성당
동문 밖에서 본 모습
동문 안의 거리 풍경
동문 밖,  벽감( niche)

사각 틀만 남겨진 성벽 창틀과

공들여 지은  벽감( niche: 둥근 반원기둥형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눈길을 끄는데,

그 틈새 비집고 자라는 야생화들이 이 터의 질긴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북문과 그레고리우스 닌 주교 동상

디오클레시예노바 거리로 와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북문인 Golden Gate가 나온다.

궁이 지어졌을 당시, 

황제 출생지인  인근 도시 솔린 (Solin; Salona)으로 출발할 때면 사용한 문으로써 주로 황제와 그 가족들이 사용하는 문이었다.

문 위쪽에 조각상, 그리고 기둥 아치에는 장식이 있었을 것이라고.

북문은 겹문으로 되어 있고 성이 두 겹다.       

북문
북문 안의 겹문

그레고리 주교상(Grgur Ninski)

북문 밖에는 거대한 검은색 동상이 서있다.

Nin(크로아티아 자다르 주의 도시 이름)의 주교, 그레고리(Grgur Ninski)의 상이다.

크로아티아 조각가이자 국제적으로 유명한 Ivan Meštrović의 작품이다.

거의 8 미터 높이의 웅장한 이 동상은 한쪽 손에는 책, 다른 한쪽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닌(Nin) 교구장이었던 그레고리 주교는 10세기에 활약한 종교지도자이다.

크로아티아 어학사전을 편찬한 어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자국 언어로 종교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로마 교황을 설득한 업적으로 크로아티아인의 존경을 받는다.

소원을 빌며 만지는 주교의 발가락


1925년 '크로아티아 왕국 천년 기념행사'에서 그레고리 주교는  Ivan Meštrović에 의해 크로아티아 인들의 국가적 열망의 상징적 인물로 묘사되어 동상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조각가의 희망에 따라 페리스타일(Peristyle)성 도미니우스 성당 앞에 자리했다.

그러나 1941년 파시스트 점령 중에 해체 및 제거되었으며 1954년 현재 위치에 재조립되었다.

이 동상의 더 작은 버전은 1931년 바라 주딘(크로아티아 북부의 도시)과 1969년 닌(크로아티아 자다르 주의 도시)에도 세워져 있다.

동상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주교의 발가락을 만져 반질반질 빛이 난다.     

세계 곳곳의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像의 특정부위 만지기는

심리적 효과를 겨냥한 것이겠지만, 

진지한 염원을 빚는 긍정 마인드 

나름의 소원성취가 딸려올 만하지 않겠는가!


베네딕트 수녀원 터와 종탑

17세기에 지어진 수녀원 종탑
예배당의 남아있는 부분

동상의 서쪽으로 1069년 궁전 북쪽 외부 성벽에 지어진 베네딕토회 수녀원이 있었다고 한다.

수녀원은 나중에 스플리트의 대주교로서 1180년 돌에 맞아 죽은 St. Arnir에게 헌정되었다.  

보이는 종탑은 훨씬 늦게 17 세기에 완공되었으며 교회와 수도원 전체 단지를 둘러싸는 벽에 포함되었다.

19세기 초, 프랑스 점령 후에 수녀원은 문을 닫았고 군사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1888년 화재로 심하게 손상됨으로써 18세기 종탑과 작은 예배당인 성 니콜라스 예배당을 제외하고는 1945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성 에우페미아 교회는 궁전 성벽 근처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 중 하나였으나 오늘날에는 교회의 기초만 보존되어 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석돌만이 남아 옛 터를 증거하고 있다.


길 위의 약속 그리고 기다림

오늘은 해지기 전 조금 일찍 귀소 키로 한다. 도중에 슈퍼 체인점 KONZUM에 들어가 장을 봤다.

며칠 전 풀라에서 트로기르 이동 중, 버스 안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와 오늘 재회하기로 한 날이니 서둘러 저녁거리를 준비할 요량이다.

값도 싸고 물건도 대체로 싱싱한 이 슈퍼는 여러 도시에서 꽤 여러 차례 이용하고 있다.

자체 제조해온 일명 ‘만능 양념’은 기본 식재료만 조달되면 이래저래 우리 입맛을 잘 맞춰주니 쓰임새가 제법 쏠쏠하다.      

숙소에 돌아온 우리가 우선 할 일은 안내장 만들어 붙이기다. 우리 모두 폰 사용 통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지도를 보고 온다고 해도 우리가 아까 고생한 것처럼 미로 같은 좁은 골목 안에 자리 한 건물에숙소 표시 안 되어있다. 찾아오기 쉽지 않을 터이다.

마침 인쇄해 온 A⁴용지가 있어서 그 뒷면에다

 ‘00님, 우리 방은 3층입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썼다.

볼펜 기둥에 돌돌 말아온 접착테이프가 제 역할을 찾았다.

밖에 나가 안내문 붙일 곳을 찾아 주변을 서성이던 중, 마치 이런 역할을 위해 서있는 것 같은 전봇대가 포착된다.

숙소 입구 바로 옆에 서 있으니, 숙소로 들어오려면 이 종이 보는 것을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을 거라며 우리 둘은 의기투합해서 종이를 붙인다. 접착테이프를 있는 대로 다 써 가며, 떨어지지 않도록 꼭꼭 눌러 붙였다.     


다음으론 저녁식사 준비 차례다.

주방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더하여 양념류까지 잘 구비되어 있는 숙소인지라, 마음먹고 저녁 메뉴도 신경 써서 준비할 수 있다. 사온 고기로 큼지막한 스테이크를 준비한다. 만능 양념을 사용한 고추장 돼지감자 찌게, 카레, 공수해 간 여러 종류의 장아찌류, 더하여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마른 멸치 등 그간 좀 아껴먹던 것들을 있는 데로 다 꺼내어 차린다. 마치 한국에서 집들이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식사 준비 끝나고도 한참 지나도록 온 단 사람은 소식이 없다.

혹시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놓칠지 몰라 골목길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인 지 오래다.

짝꿍은 바람소리를 듣고서, “어! 지금 소리 난 거 같은데?” 하며 몸을 들썩인 것도 여러 차례다.

저녁을 같이 먹기엔 시간이 너무 흘러가버렸다.

거의 온종일 걸었기 때문에 진즉부터 허기졌던 우리는 9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우리끼리 식사하기로 결정한다.

식어버린 음식을 오븐에 다시 덥히고, 뚜껑 덮어 놓았던 반찬들을 당겨 말없이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우리 둘 다 속으로 섭섭함을 누를 수 없었던 것 같다.

여행지 약속은 더러 가벼이 여기기도 한다지만

우리로선 그녀와 꼭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제안했었다.

홀로 나선 여행길, 벌써 한 달여를 혼자 잠자리에 들었을 테니,

단 이틀이라도 둘이 더해져 셋이 되면 훨씬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고,

 포만감은 평생 먹어 온 음식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래저래 실망이 점점 커진다.

‘더 간곡하게 권유해야 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안 올 건가 봐.” 내가 말하자,

“아녜요, 온다고 했으니 올 거예요.” 한다.

식탁은 쓸쓸히 치워지고, 불 끄고 누운 잠자리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바깥 동정을 살핀다.

혹시라도 아래층에서 들려올만한 한국말을 가려내는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현관에서 관리인이 예약자 아니라고 열어주지 않아 그냥 돌아가게 하면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시간은 이제 밤 11시를 넘겼고 드디어 우린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한다.      

그때였다. 조심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문을 여니, 기다리던 그녀다.

왜 이리 늦었냐니까, 아까 늦은 오후에 왔었는데 1층에서 안내하는 남자가 하는 말이 ‘그 중국 여자들이 관광하러 밖으로 나갔다’고 하더란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숙소로 되돌아가 기다리면서 우리가 관광 후 돌아와서 쉴 시간을 감안해서 늦게 왔다는 것이다. 관리인의 무관심한 대답이 양쪽의 소모적 기다림을 몇 시간째 연장시켰다.

‘기둥에 붙여 둔 종이는 보지 못했느냐’고 하니까 밤이라 못 봤단다.

그사이 혼자서 저녁은 먹었고, 그래도 약속을 했던 터라 와 본거라고.      

원래는 오늘 밤부터 같이 숙식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부재중이라고 하니 자기 숙소로 되돌아가서 연박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 세 사람의 합숙은 내일 하루 밤만으로 줄어들었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금세 12시를 훌쩍 넘겼다..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식사와 일정을 같이 하기로 하고 그녀가 일어선다.

그런데 이 야심한 시각에 그녀 홀로 어둔 골목길로 내보내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는다.

나로서도 불과 몇 시간 전에 도착한 낯선 이 동네의 어둠이 내키지 않지만 일단 배웅을 자처한다.

어깨 넓은 두 사람이 걸을 만한 폭 좁은 골목길은 구부러진 데다가 가로등 없어 침침하다.

몇 분을 걸어 좁은 길 벗어나자, 가로등 켜진 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자신의 숙소까지는 넓은 길이란 말에 그 헤어져 되돌아선다.

돌아오는 불과 몇 분 거리의 골목길은, 내 그림자에 스스로 놀랄 만큼 사뭇 긴장된다.

골목길 한쪽에 터만 남아있는 아주 오래된 우물의 역사만큼이나 기인 사연 스몄음직한,

어둠 속에서도 반들거리는 포석의 특별한 느낌이 발걸음에 전해져 오는 듯도 하다.      

2천여 년 역사 서린 터는 밝은 낮에서나 감탄 대상이지,

심야의 이방인에게 그 유구함은 어둠과 버무려져

짧지만 강한 느낌으로 몰아넣는 독특한 경험을 안겨줬다.


어둔 골목 가득 운 바람 소리와

구부러진 좁은 골목길 장면이

한동안 기억을 헤집 가끔씩 뛰쳐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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