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가 요란하네
집 사람이 되고 보니 계획에 없던 것들이 더해졌다.
이것부터 고백해 본다. 나는 물 먹는 하마다.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무게감을 느끼며 알맞은 각도로 따르고 다시 닫아 냉장고에 넣고... 몇 분 뒤 또 같은 동작 반복, 반복, 반복.
밥 짓고 국 끓일 때 또 한 냄비의 물이 필요하다. 집에 붙어있으니 이 일도 어찌나 되풀이되는지. 쌀 씻기 후 마지막 밥물은 생수로 잡는 게 익숙하니 이제와 수돗물 쓰기는 사양이다.
상시 갈증 인간과 끼니 챙기기의 만남은 생수 더미를 두던 뒷베란다에 긴장감을 가져왔다. 2리터 새 물통을 낑낑 옮기고 돌아서면 거짓말처럼 재주문 타임이 되는 것이다. 이건 택배 기사님께도 내 팔 근육에도 못할 짓이다. 손익면에서도 물음표가 떠오른다. 물 사 먹는 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줄이야. 빼도 박도 못하는 레드카드는 분리수거함에 산처럼 쌓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다.
똑같이 생수를 비축하고 살던 대학 자취시절엔 실외형 인간이었다. 낮 시간 회사에 있을 때는 물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고 육아휴직기는 제정신이 아니라 아무 기억이 없다.
상황이 달라졌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부엌 가구에 새로 구멍을 뚫지 않아도 정수기 설치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세입자로서 그간 해온 고민이 사르르 사라졌다.
휴직 첫 달 마지막 주, 나는 최소의 노력으로 원하는 온도와 양이 컵에 졸졸 담기는 새 기기와 사랑에 빠지며 '더하기'의 포문을 열었다.
미니멀을 꿈꾼 시간. 실내 인간으로 살면 안 쓰는 물건을 처분하고 구매도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성과가 없던 건 아니다. 집안일이 늘 그렇듯 일한 자만 소상히 아는 노동이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게 매우 좀스러울 뿐.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드디어 베란다 벽 창고를 정리했어!“ 해 봤자 닫힌 문 너머 얼마큼의 자리가 났는지는 나만 안다.
빼기에 진도가 안 나가니 더하기에 계속 눈이 갔다. 정수기처럼 없다 생긴 것뿐 아니라, 있던 중 새 자리 새 역할을 찾은 것들도 그 주인공이다.
화단 가지 끝이 온통 붉던 계절, 부엌에 있던 식탁을 무심히 거실 가운데로 끌고 왔다. 막연히 바랐던 거실 서재화가 이토록 대수롭지 않게 실현되다니. 식탁은 나의 글쓰기와 번역 공부의 장이 되었다. 아이 등교 후 시작되는 1인 경영지원팀도 이곳에 앉아 근무했다. 열심히 상을 닦아 밥도 이곳에 차렸다. 아이도 같이 앉아 책을 읽고 보드게임과 숙제를 했다. 거실 창에 드는 볕이 식탁까지 닿는 풍경이 꽤 만족스러웠다.
권태란 본래 갑작스러운 것인가. 가을이 설핏하던 때 문득 거실이 답답해 보였다. 식탁을 냉장고 옆으로 옮겼다. 몇 달 전 그랬던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 없이. 두 계절에 걸친 식탁천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막을 내렸다.
취업 후의 인간관계는 퍽 한정적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공유하는 일상이 비슷해 얘깃거리를 찾기 편한 회사 동료들.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도 경중을 알 수 있는 동족의 인류.
한 번은 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회사 넋두리를 했다. 대화 끝에 '그토록 불행한데 왜 다니고 있니.' 하는 염려가 돌아오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내가 철이 없었다.) 사무실식 해학과 풍자는 회사 사람이랑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죽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낸 입사동기들이 하나 둘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더해지는 인간관계라곤 조직개편 때마다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 정도. 마음이 한창 어두워있을 때는 그마저 힘을 들이고 싶지 않아 눈을 흐리고 고개를 숙이며 다녔다. 좁은 관계는 고이고 말라갔다.
휴직 후 또 더해진 것은 그러니까, 사람.
낯선 이들을 많이 만났다. 글쓰기, 그림책 만들기 단기 강좌에서 나와 관심사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직업과 연령대인 사람들을 마주했다. 좋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집중독서모임과 번역 스터디에 손들고 찾아갔다.
동네 어머니들과도 제법 안면을 텄다. 내성적 인간에게는 시간이 약이 된다. 여러 번 스치고도 겸연쩍어 말 건네기 어려웠던 분들도, 일 년 가까이 지나니 진심 어린 반가움으로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허물없이 지낼 정도는 아니지만, 집 근처에 아는 엄마 하나 없던 휴직 전 유치원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푸근하다.
또래 이웃이 생겼다는 말은 특별히 약속한 만남이 아니어도 오가는 길 자연스레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가 연습 삼아 혼자 학원에서 집에 오던 길을 몇 번 본 동네 친구 어머니가, 그 시간엔 여기저기 엄마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 아이를 볼 수 있으니 복직해도 걱정말라 말해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한 아이를 온 동네가 키운다는 말이 처음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회사 밖 세상에 똑똑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저라는 사람이 있답니다. 남 과장이 아닌 이름 세 글자로 소개합니다. 저는 이런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이와 이런 생활을 합니다. 온전한 제 하루에는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휴직은 더하기와 빼기가 착착 교차하며 일상을 재배치하는 시간이 되었다. 도무지 만나지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던 세상이 반갑다며 잘 지내보자며 문을 열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