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았던 일 년을 돌이키며
취업 후 일이년 정도 지났을 때, 졸업했던 학과 교수님을 뵌 적이 있다. 투박한 경북 사투리의 소유자. 인사를 드리자마자 질문이 돌아왔다. 경상도 출신인 나로서는 얼만큼의 다정을 표하려 애쓰시는지 느낄 수 있는, 타지인이 들으면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로봇 말투로.
"그래, 너는 회사 다니니까 어떠냐?"
일요일 밤마다 다음 날의 출근을 괴로워한다 답했다. 또래 지인들과 늘 하던 소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 역시 타성에 젖었다 자랑하기라도 하듯. 그런데 교수님 반응이 이상했다.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시는 것이다. 예전 강의실에서 늘 학자로서의 순수함을 느끼게 했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내 대답을 놓고 탐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시다니.
이상하다. 취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
너는 회사 가는 게 왜 싫으냐?
교수님은 대학 강단에 서기 전 몇 해간 중고등학교 교편을 잡으셨다고 했다. 갓 취업했던 그 때 자신은 매일 아침 눈 뜨고 학교에 가는 게 그렇게 즐거우셨단다.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참 재미있고 설렜다고. 자기의 과거를 떠올리면 사회 생활 초반부터 지루한 표정을 짓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회사에 가기 싫을 때마다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힘든 취업준비기를 떠올리면 한두 해만에 좀 이상해진 소리가 맞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뽑아준 것이 너무 고마워 평생 충성을 다짐했을 정도다. 동기들과 노닥이는 게 좋았던 신입 때는 어린 시행착오와 이해 못할 상사의 지시도 금세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었다. 큰 돈은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급여에 감사했다. 결혼과 출산의 벽이 낮게 느껴진 것도 스스로 생계 정도는 꾸릴 몸이 된 덕분이었다.
교수님을 만나던 때는 허풍이 좀 있었다 해도 이후부터는 계속 출근의 이유에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어떤 직업이든 10년 쯤 되면 한계와 고충을 알 만큼 알지 않는가. 나는 적어도 내 행복을 회사로부터 조금 떨어뜨려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하는 사람으로 살되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휴직을 통해 나를 나답게 하는 경험의 씨앗을 만들었다. 가족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편집해 올리고 그림책 만들기에 도전했다. 글을 쓰고 영어 번역을 공부하고 새로운 인연도 많이 만들었다. 집 사람이 되어 가전 가구와 씨름하고 매일 밥 짓는 고민도 해 보았다. 가족과 푹 달인 시간을 보낸 것은 그 중 으뜸이다. 올해 내가 일에 거리를 두고 뿌린 씨앗은 언젠가 반드시 의미있는 무언가로 자라날 것이다.
12월 초부터 조직개편이 있어 한동안 회사 연락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정신은 이미 반 복직 상태였다. 발령 문서에 이름을 실은 채 곧 다시 출퇴근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사무실 옆 자리라 예고하는 동료의 문자에 다행이라 기뻐한다. 한 동기는 소식을 듣고 '웰컴 백 투 헬'이라 말한다. 신기하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둘러싼 풍경만 무대배경처럼 서서히 바뀌는 중이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갔나 툴툴대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이 감사한 일 년이었다 싶다. 다른 건 몰라도 "그동안 뭐 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 글 뭉치를 내밀면 되겠다. "너는 회사 다니니까 어떠냐?" 하면 뿌린 씨앗이 있어 단단해졌다고 말하리라. 출근이 설레고 사랑스럽지 않아도 내 행복은 그것만이 아니기에, 더 많은 것들을 위해 일하고 돈 벌 수 있어 다행이라 말할 것이다.
첫 복직보다 더 궁금하고 기대된다. 두 번째 휴직 이후는 또 어떤 삶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