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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리 Sep 10. 2023

너는 나의 거울 (2)

현재의 나, 말하는 나를 비추는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아이를 이해하도록 돕던 거울은 때때로 현재의 나를 비춘다.

 

"윤아,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돼."

"미안."

"응? 미안할 게 아니라 엄마가 그냥 알려주는 거야."

"아 맞다. 미안."


왜 그럴까. ‘알았어' 정도로 지나갈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자꾸 붙는다. 건성으로 대답한 것 같긴 하지만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보여 마음이 편치 않다. 같은 말을 한번 더 내뱉은 아이는 지적받을세라 급히 덧붙인다.


"방금 한 말은 잘못 말한 나한테 미안하다는 뜻이야!"

 

솔직하고 예의 바른 두 글자 감정 표현이 갑자기 거슬리는 말이 되었다. 인지하고 나니 같은 거슬림이 금방 귀에 꽂힌다. 무언가를 하던 중 아이가 상세한 요구를 더해올 때, "어, 알겠어, 미안." 이라며 정신없이 대꾸하는 내 입. 내 물건을 내가 떨어뜨리고도 놀라서 하는 말.


나야말로 입버릇처럼 썼던 것이다. 추임새 수준으로 가볍게, 단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아이는 정확하게 ‘알았어‘나 ’아하‘, ‘아차’를 대체하는 말 정도로 나를 따라 했을 것이다. 가르친 지도 모르게 가르치고 있었다.




“엄마는 왜 자꾸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떤 줄 알겠다'는 말을 해?"


내가 그랬다고? 입가에 뾰루지가 났을 때 "누가 보면 다친 줄 알겠어.", 장바구니를 들고 도서관에 갈 때 "다른 사람이 보면 마트 가는 줄 알겠네.", 하다못해 아이의 '미안' 추임새에조차 '자꾸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혼낸 것 같잖아.' 하던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온다.


변명하자면 '~처럼 보인다'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 뉘앙스가 다르다. 대상 자체의 특성보다 응시하는 제삼의 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시선을 의식하는 표현이니까. 나와 가족보다 불특정한 타인의 생각을 앞서 생각하니까. 아이 덕에 별 희한한 말 습관을 알게 된다. 따라 하지 않고 먼저 물어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주부터 장마래. 오늘 비 많이 오나 봐. 무섭다~"


비 소식에 대한 호들갑이라 해 두자. 맥락, 표정 같은 비언어적인 것들이 있어 오해를 살 줄 몰랐던 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붙인 부정어.


순간 잡고 있던 아이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학교에 불이 날까 봐 무섭고 이것도 저것도 무섭다던 말이 뒤늦게 떠오른다. 요즘 왜 겁이 많아졌는지 툴툴거렸는데 이번에도 내가 일조했나보다.


며칠 뒤 교문 앞에서 1교시 발표가 무섭다며 주눅 든 아이. 공감과 격려 이후 이 말을 덧붙였다.


"이건 무서운 게 아니라 떨리는 거야. 긴장해서 그런 거야. 지나가면 바로 괜찮아지는 거야."


사전적으로는 무서움에 포함되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세밀한 감정을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했다. 긴장감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금방 지나가는 일상의 일부임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임을.




모든 것이 내 잘못, 부모의 잘못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가 대담한 성격이라면 별 상관없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마침 기질적으로 섬세하고 언어적으로 예리하다. 그래서 더 정확한 언어를 쓰고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이참에 내 습관도 알고 개선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제부터라도 엄마의 말들이 아이를 헷갈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부모만의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평소 듣도 보도 못했던 별 이상한 표현을 어디선가 배워와 쓰지 않는가. 딱히 나쁜 말도 아니지만 좋은 느낌도 아닌 말을 쓸 때면, 민망함에 부디 선생님께서 '집에서 부모가 저렇게 말하나 보네.'라고 단정 짓지 말아 주시기를 소망한다.

 

며칠 전에는 가끔 “으디이 보자아~(어디 보자)"하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남편의 타령조가 여덟살 입에서 무심히 나오는 걸 들었다. 나는 배를 잡고 한참이나 웃었다. 애가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고 전해준 날 저녁에도 아이는 90년대 유행 랩 소절을 덤덤하게 흥얼거렸다. 어처구니없이 귀여운 앵무새다.

 

아이에게 현재의 내가 투영되는 경험을 자꾸만 하니 퍽 책임감이 든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좀 더 단정한 태도와 다정한 말씨를 품어야지.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고,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의 거울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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