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놀아봤자(1)

애들 보는 게 어려워봤자 뭐 얼마나 어렵겠어?

by MMQ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기란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라고요. 무슨 일을 저지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타고난 기개나 포부가 아니라 얼마큼 간절한가란 거죠.


그런데 말이죠, 이 간절함이라는 게 아주 요사스런 감정이다, 이 말입니다. 진짜 죽을 것도 아닌데 죽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며칠을 쫄쫄 굶으면 밥 한술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당연히 들겠죠. 하지만 '죽도록' 심심한 걸 내버려둔다고 정말 사람이 죽진 않잖아요?


그러나 그때 헤이즐은 말 그대로 심심해서 죽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이놈의 지루함만 떨쳐낼 수 있다면 요단강에서 스쿠버 다이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덜컥 이렇게 말했던 거죠.


“제가 맡을게요. 애들이 놀아봤자죠.”


불과 오 분 전까지만 해도 헤이즐은 공원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보고 있었더랬습니다. 날씨는 한 여름 오후답게 후덥지근했고 공원은 지나가는 개 한 마리 없이 적막했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따분하게 느껴지려는 그때, 공원 귀퉁이의 공터로 웬 무리가 소란스레 등장하자 헤이즐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겁니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 약속 한 시간 전에 펑크라니?”


“그러게 내가 그 일자리 소개소는 영 미덥지 않다고 했잖아요.”


“소개비는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소개비가 걱정이에요? 당장 애들은 어떡하고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아이를 하나씩 붙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중엔 신발 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쉼 없이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는 아이도 있었고, 투우투우 하며 입으로 엄지 손톱만한 공기방울을 끊임없이 뱉어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일 어려보이는 아이는 다리가 아픈지 옆 어른의 바짓자랑이에 매달려 칭얼거렸고, 그러든지 말든지 그 형제로 보이는 아이는 또래와 깔깔대며 신나게 서로를 밀쳐댔습니다.


“다들 누구 적당한 사람 없나 생각해봐요.”


“한 시간 안에 애들 맡길 사람을 무슨 수로 구해요?”


이런 상황이었으니 헤이즐이 대뜸 애들을 맡겠다 외쳤을 때 사람들이 그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던 거죠.


헤이즐이 재야에 묻힌 애보기 전문가라던가, 메리 포핀스나 내니 맥피를 부를 수 있는 비밀주문을 알고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닙니다. ‘일단 저지르면 뒷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가짐이었지요.


말했잖습니까, 용기란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라고요.


어른들은 머리를 맞대고 쑥덕였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죠? 아 제가 알아요, 이름이 헤이즐인가 그렇다던데. 뭐 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는 있대요? 아니요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애들을 보겠대요? 설마 수상한 사람은 아니겠죠?


한참을 그렇게 쑥덕이던 어른들은 마침내 의견이 모인 듯 과자조각을 발견한 비둘기 떼처럼 헤이즐을 향해 우르르 다가왔습니다.


뭐라 한 소리 하려나보다 싶던 차, 갑자기 한 어른이 자켓 속에서 뭔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꺼내 헤이즐에게 건네는 게 아닙니까.


“여기 애들 이름이랑 저희 연락처에요. 이건 저희가 연락이 안 될 때를 대비한 비상 연락망이고(아마 필요 없을 거예요. 다들 항시 전화기를 몸에 딱 붙이고 있을 테니까) 이건 아이들이 다니는 병원과 주치의 선생님들의 번호에요. 수첩 뒤에 카드를 하나 껴놨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이 카드를 쓰세요. 일당은 지금 계좌번호 주시면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그리고….”


그는 헤이즐을 붙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과 만화 캐릭터, 아이돌 가수 등을 한참 나열하더니 간식과 장난감이 든 커다란 가방들을 한 아름 품에 안겼습니다. 어른들은 저마다 자기 아이를 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으며 몇 년은 헤어져 있을 것처럼 애틋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곤 일렬로 늘어서서 한 명씩 헤이즐의 손을 잡고 ‘잘 부탁해요’ 하고 웃는데, 선거유세를 하는 정치인의 기분이 이런 거려나 싶었지요. 인사를 마친 어른들은 과자조각을 다 해치운 비둘기들처럼 미련 없이 사라져버렸답니다.


그렇게 마뜩찮아 했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맡겼냐고요?

글쎄, 용기란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래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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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서사 #여성주인공 #동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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