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젓가락(2)

후루룩 들이켰을 뿐인데 이게 웬 소란이람?

by MMQ

"손님, 바쁘신 중에 죄송하지만 꽃값은 주셔야지요."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꽃가게 주인 노마 씨가 로버트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그의 손엔 로버트 씨가 주문한 커다란 장미꽃다발이 들려있었습니다. 로버트 씨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노마 씨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이로 냅다 물어뜯어 버렸지요. 치과 의사라서 그런지 이 하나는 끝내주게 튼튼한 로버트 씨였습니다.


"꽃다발이 못쓰게 되더라도 꽃값은 주셔야 합니다!"


노마 씨가 로버트 씨의 팔에 매달려 소리쳤습니다. 어찌나 끈질긴지 로버트 씨가 암만 팔을 흔들어도 노마 씨는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노마 씨는 로버트 씨의 팔에 매달려 있고, 로버트 씨는 두들리히 씨의 멱살을 쥐고 있고, 두들리히 씨는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몸부림치고 있고!


두들리히 씨의 얼굴이 곧 죽을 사람처럼 시퍼렇게 질려있지만 않았다면 이 우스꽝스런 기차놀이를 본 누구나 배꼽을 쥐고 웃어버렸을 겁니다!


두들리히 씨는 사력을 다해 로버트 씨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마침 노마 씨가 로버트 씨의 겨드랑이 안쪽을 세게 꼬집었기 때문에 두들리히 씨는 생각보다 쉽게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쉽게 풀려났던 탓일까요? 중심을 잃은 두들리히 씨는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박고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악!"


넘어지던 순간, 두들리히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경꾼들 중 한명의 머리채를 낚아챘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프란체스카 씨의 머리를 잡고 넘어진 것이 문제였지요.


두들리히 씨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자마자 기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정작 기절할 듯 놀란 건 프란체스카 씨였습니다. 왜냐하면 두들리히 씨가 잡아당긴 탓에 잘 고정되어있던 가발이 훌러덩 벗겨져버렸거든요!


가뜩이나 고민할 거리가 넘쳐나는 사춘기에 머리가 숭숭 빠진다는 게 어린 프란체스카 씨에게 얼마나 큰 짐이었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하지만 프란체스카 씨는 이제껏 자신의 비밀을 잘 감춰왔습니다. 부띠끄 주인 첸들러 씨를 제외하곤 프란체스카가 대머리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답니다. 방금 전까지는요.


당황한 프란체스카 씨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듯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아, 가엾은 프란체스카. 그의 머리는 짧은 갈색 머리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것이 작은 지구본 같았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프란체스카 씨를 향해 외투를 벗어 던졌습니다. 그건 평소 프란체스카를 흠모하던 집배원 폴라 씨였습니다. 폴라 씨는 외투로 프란체스카 씨의 머리를 곱게 감싼 뒤 속삭였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넘어질 때 발목을 삔 것 같아요.”


잠시 고민하던 폴라 씨는 프란체스카 씨에게 정중히 허락을 구한 뒤 두 팔로 그를 감싸 안고 힘을 읍! 주었습니다.


"세상에나!"


매일같이 크고 작은 우편물을 날라 캥거루처럼 단단해진 팔과 어깨는 팝콘조각을 들어 올리듯 가뿐하게 프란체스카 씨를 안아 올렸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늠름하던지 다들 껌뻑 죽는 시늉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폴라 씨는 세계를 구한 영웅처럼 멋졌습니다!


"으악! 불이야!"


갑자기 구경꾼들 사이가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질투심 많은 파비앙 씨 때문이었지요. 파비앙 씨는 그동안 낮잡아 보고 무시했던 집배원 폴라 씨가 별안간 모두의 주목을 받자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겁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파비앙 씨는 자신의 벨벳 코트를 벗어 들고 한발 늦게 프란체스카 씨를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주변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급하게 코트를 벗어 파비앙 씨는 그만 힐다 씨의 담뱃대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힐다 씨의 담뱃대에서 튕겨 나온 불똥은 바로 옆에 있던 울라프 남작의 깃털 모자 위로 떨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파비앙 씨가 허둥거리며 코트를 이리저리 휙휙 휘두르는 바람에 모자에 화르륵 불이 붙어 버렸지 뭐에요!


"사람 살려!"


울라프 남작이 자지러질 듯 울부짖었습니다. 사람들은 재빨리 울라프 남작의 모자를 벗겨 발로 마구 밟았습니다. 그러나 건조했던 날씨 탓인지 불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 모자를 밟는 사람들의 바짓가랑이까지 태워버릴 기세로 활활 타올랐습니다.


"다들 비키세요!"


국수가게의 피요코 할머니가 달려오며 외쳤습니다. 할머니는 국수 삶던 물을 울라프 남작의 불타는 모자 위에 끼얹었습니다. 물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피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사람들은 불이 아니라 펄펄 끓는 물에 사타구니를 벌겋게 데였을 겁니다.


그렇게 국수 한 젓가락으로 시작된 소동은 막을 내렸습니다. 새카맣게 타 버린 모자를 보고 울상을 짓는 울라프 남작을 부띠끄 주인 첸들러 씨가 살살 달래 돌아갔습니다. 골초 힐다 씨는 담뱃대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집배원 폴라 씨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대담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곤 얼굴이 터질 것처럼 시뻘게졌고,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란체스카 씨는 숨을 고르며 놀란 가슴을 다독이기 바빴습니다.


길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있던 두들리히 씨는 정신이 들자마자 두리번거리며 로버트 씨가 어디 있는지부터 살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씨는 두들리히 씨가 그러던 말던 씩씩거리며 근처 술집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렸습니다. 꽃가게의 노마 씨는 꽃값 대신 술이나 한 잔 얻어먹을 생각으로 로버트 씨의 뒤를 눈치 없이 졸래졸래 따라갔고요. 아리아네트 씨는 어떻게 됐냐고요? 로버트 씨와 두들리히 씨가 한데 엉켜 죽자 살자 난리를 칠 때 오만정이 다 떨어진 얼굴로 그 꼴을 보고 있더니 혼자 휘적휘적 가버리던데요? 성질 나쁜 로버트 씨나 사탕발림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두들리히 씨나, 이제 남자라면 아주 지긋지긋하다나요.


행크와 필립은 벌떡 일어나 다시 마차를 끌었고, 모리슨 씨는 바우에게 튼튼한 새 목줄을 채웠습니다. 발바닥을 다친 인력거꾼 씨아라 씨은 하릴 없이 서 있던 파비앙 씨의 등에 업혀 무사히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엄살쟁이 메이 씨는 자기도 진찰을 받아야겠다는 둥 호들갑을 떨며 파비앙 씨와 씨아라 씨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여기 국수 한 그릇 더!"


조엘 씨가 몸에 묻은 국수 건더기를 털어내며 외쳤습니다. 국수를 한 젓가락밖에 먹지 못한 조엘 씨는 여전히 배가 고팠으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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