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들이켰을 뿐인데 이게 웬 소란이람?
공기에서 사각사각한 찬기가 묻어나는 어느 늦가을 오후였습니다. 조엘 씨는 오늘따라 뜨끈한 국물요리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메뉴를 찾아 길거리를 이리저리 헤매던 그는 문득 국수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쫄깃한 면과 뭉근하게 익은 야채, 그 위에 소복하게 얹은 고소한 볶음 고명. 그래, 찬바람 불 땐 국수만한 게 없지! 조엘 씨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앉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피요코 씨, 여기 국수 하나 주시오!"
잠시 후 빼빼 마른 피요코 할머니가 잘 삶아진 국수 한 그릇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릇이 넘치도록 넉넉한 할머니의 인심에 조엘 씨는 무척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조엘 씨는 허연 김이 풀풀 나는 국수를 후후 불어 한 입 크게 후루룩 삼켰습니다.
"앗 뜨거!"
아이고, 이걸 어쩐답니까. 글쎄 국수 끝에서 튄 뜨거운 국물이 맞은편에 앉아있던 메이 씨의 눈에 들어가 버린 겁니다. 메이 씨는 손가락 끝이 살짝만 베여도 하루 종일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는 엄청난 엄살쟁이였습니다. 메이 씨는 눈을 감싸 쥐고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의사를! 의사를 불러줘! 이러다 눈이 홀랑 익어버리겠어!"
빵빵하게 솟은 메이 씨의 뱃살에 국수가게의 식탁이 한 뼘은 튀어 올랐습니다. 그러자 식탁위에 놓여있던 국수 그릇이 죄다 뒤집어져 손님들은 온몸에 국수 건더기를 뒤집어쓰고 말았지요. 때 아닌 봉변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국수 그릇 하나가 식탁 끝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와장창 하고 깨져버렸습니다.
"다들 발 들어요, 발 들어!"
피요코 할머니는 서둘러 빗자루를 들고 와 깨진 그릇을 주워 담았습니다. 날카로운 그릇조각에 누군가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그러나 나이가 들어 눈이 가물가물했던 피요코 할머니는 도로 쪽으로 튀어나간 그릇조각 하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악!"
인력거꾼 씨아라 씨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습니다. 재수 없게도 씨아라 씨는 도로 위에 떨어진 그릇조각을 힘껏 밟아버리고 만 겁니다. 하필 또 맨발바람이었던지라, 그릇조각이 박힌 씨아라 씨의 발에선 시뻘건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던 개 바우가 씨아라 씨를 보고 마구 짖기 시작했습니다. 모리슨 씨의 개 바우는 어젯밤 닭 우리에 들어온 여우를 쫓다 앞발을 다쳐 병원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간발의 차로 여우를 놓친 바우는 여태 분을 삭이지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자신과 똑같이 발을 다친 씨아라 씨를 보고 어젯밤의 굴욕을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이까지 드러내며 사납게 짖어댔습니다.
"왈왈왈! 으르렁 왈왈왈!"
모리슨 씨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버텨보았건만, 바우는 끝내 목줄을 끊고 도로 위로 달려 나갔습니다.
"히히힝!"
갑자기 튀어나온 바우에 놀란 말 행크가 앞발을 높이 들며 울부짖었습니다. 함께 마차를 끌던 말 필립도 덩달아 겁을 집어먹고 날뛰었습니다.
"워워! 이랴!"
다리와 다리가 엉키고, 엉덩이와 엉덩이가 부딪히고, 급기야는 고삐 줄까지 멋대로 엉켜버려 하도르와 필립은 큰 소리를 내며 옆으로 넘어졌습니다.
말들이 넘어지자 말들이 끌던 마차도 따라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시커먼 차양이 벌컥 벗겨지더니 사람 둘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습니다.
"내 저 인간을 그냥!"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길 건너 꽃가게에서 꽃다발을 사던 치과의사 로버트 씨가 마차에서 굴러 나온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차에서 튀어나온 건 다름 아닌 로버트 씨의 부인 아리아네트 씨와 그의 글짓기 선생 두들리히 씨였습니다. 그들은 로버트 씨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놀러 다니곤 했는데, 일부러 검은 차양을 씌운 마차까지 불러 호숫가로 은밀히 소풍을 다녀오던 차에 이렇게 딱 걸리고만 겁니다.
"로버트 씨, 이건 오해입니다! 진정하세요!"
로버트 씨가 멱살을 잡고 흔들자 두들리히 씨는 금방이라도 허리가 반으로 접힐 것처럼 휘청거렸습니다. 두들리히 씨는 자신과 아리아네트 씨는 단지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해 호숫가를 다녀온 것뿐이라며 필사적으로 둘러댔지요. 그러나 장밋빛 돗자리와 먹다 남은 치즈와 과일, 반쯤 비어있는 와인 병까지! 단순히 시적 영감을 얻으러 간 것 치곤 지나치게 로맨틱한 준비물들뿐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늘은 로버트 씨와 아리아네트 씨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사실 로버트 씨와 아리아네트 씨는 긴 이혼소송 중이었는데, 이제라도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까 싶어 로버트 씨는 일찌감치 치과를 닫고 꽃다발을 주문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눈앞의 상황이 전부 오해일 뿐이라고 가장 믿고 싶었던 건 로버트 씨였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두들리히 씨의 입가에 묻어있는 아리아네트 씨의 립스틱이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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