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보는 게 어려워봤자 뭐 얼마나 어렵겠어?
“너희 다수결이라고 아니?”
“그게 뭔데요?”
“우선 하고 싶은 놀이를 하나씩 말해보자. 그리고 손을 들어 투표를 하는 거지. 투표가 뭔지 알아?”
“대통령 뽑는 거요.”
“맞아! 대통령을 뽑을 때랑 똑같이 하면 돼. 그러니까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에 손을 들어서 제일 많은 표가 나온 놀이를 하는 거야. 이렇게 가장 많은 사람이 찬성한 걸로 뭔가를 결정하는 걸 다수결이라고 해.”
“손은 한 번만 들어야 돼요?”
“그럼! 누구는 한 번 들고 누구는 열 번 들면 한 번 밖에 못 드는 사람이 억울하잖아?”
“그러다 내 놀이에 아무도 손을 안 들면요?”
“그땐 깔끔하게 단념해야지. 모두가 함께 내린 결정이니까. 다 같이 사이좋게 놀려면 나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도 왼손을 들어야 되냐 오른손을 들어야 되냐, 손가락을 펴야 되냐 접어야 되냐 등등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지요.
“자 우선 인어놀이 하고 싶은 사람부터 손 들어보자.”
허나 헤이즐은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이안’이란 이름의 치명적인 맹점을 말이죠.
“이건 불공평해요!”
“이안은 자기 누나 놀이에만 손을 든단 말이에요!”
그랬습니다. 이안은 마야의 눈치를 보느라 경찰놀이에만 손을 들었던 겁니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도 죄다 자기 놀이에만 손을 들었기 때문에 이래서는 꼼짝없이 딱 두 표 나온 마야의 놀이를 할 수밖에 없었죠.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헤이즐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결정에 공헌한 ‘그 수단’을 차용하기로 했습니다.
“얘들아, 지금부터 둘씩 짝지어서 가위바위보 해.”
마침내 인어놀이와 경찰놀이로 선택이 좁혀졌습니다.
“이제 인어놀이와 경찰놀이 중에 더 하고 싶은 놀이에 손을 드는 거야 알겠지?”
이번에 마야는 살짝 뒤돌아 손을 들도록 했습니다. 마야가 보지 못하게 하니 이안은 조심스레 인어놀이에 손을 들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낙찰된 건 경찰놀이였습니다. 마야는 신나서 폴짝거리며 말했습니다.
“잘 들어. 나는 경찰이고 너흰 도둑이야. 도둑을 잡으면 밧줄로 묶어서 감옥에 가둘 거고, 한번 감옥에 갇히면 못 나와!”
마야는 쪼르르 달려가 가방에서 줄넘기를 꺼내왔습니다.
“잡히면 이걸로 묶을 거야.”
안 돼! 헤이즐은 속으로 비명을 삼키며 얼른 마야의 줄넘기를 빼앗았습니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선생님이 보관해둘게.”
“그럼 도둑을 뭐로 묶어요?”
“꼭 밧줄이 있어야겠니?”
“밧줄도 없이 어떻게 경찰놀이를 해요?”
하,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헤이즐이 아니죠. 헤이즐은 뻔뻔스레 대꾸했습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건 어떨까?”
“그게 뭐에요. 이상해.”
“자자, 내 말 좀 들어봐. 여긴 평범한 공원이잖아? 하지만 이제부터 여길 도둑들이 판치는 어두컴컴한 뒷골목이라고 상상하는 거야. 그리고 경찰인 네 손엔 이런 줄넘기 따윈 비교도 안 되는, 전기가 번쩍번쩍하는 ‘메가 일렉트릭 밧줄’이 있다고 상상하는 거지. 감옥은… 그래, 여기가 좋겠다. 지금부터 여기는 팔뚝만한 쇠창살이 박힌 ‘암흑 던전 감옥’이야 알았니?”
헤이즐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철제 벤치를 발끝으로 가리켰습니다. 처음엔 미심적은 얼굴로 헤이즐을 바라보던 아이들도 헤이즐이 ‘어두컴컴한 뒷골목’이니 ‘메가 일렉트릭 밧줄’이니 ‘암흑 던전 감옥’ 같은 말들을 쏟아내자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집중했습니다.
“또 너희는 그냥 도둑이 아니야. 세계 최고의 도둑 집단, ‘괴도 스파이더즈’인 거지. 보통 도둑은 감옥에 갇히면 못나오잖아? 그런데 너희는 달라. 괴도 스파이더즈는 탈출 솜씨도 뛰어나서 경찰이 한눈 판 사이에 동료를 구출해올 수 있거든!”
그밖에도 헤이즐은 이런 저런 규칙을 추가해 경찰놀이를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헤이즐이 ‘무지개 보석’이라 이름 붙인 보잘것없는 돌멩이들을 호프 다이아몬드 보듯 바라봤지요.
“선생님이 신호하면 시작하는 거야. 준비, 시-작!”
신호와 동시에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진정 악명 높은 도둑들이라면 생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도망쳤겠죠.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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