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혹시 산타인가요?
방송작가로 취업을 한 후 막내, 서브 딱지를 떼고, 드디어 메인 프로그램을 맡았다.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시사에는 크게 관심도 없고 지역의 현안에 대해 그리 해박하지도 않았는데 시사프로그램을 맡았더니 매일이 산 넘어 산이었다. 그러다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의 박사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왜 그리 마음을 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사님은 본인의 인터뷰 분량 외에도 지역의 굵직한 패널들의 핫라인을 오픈하며 패널리스트를 '자발적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급할 땐 언제든 연락하라는 호의도 보이셨다. 일면식도 없었던 나를 왜 그리 챙겨주셨을까. 덕분에 나는 메인을 맡은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스토리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될놈될'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세상이 험한 곳으로 발 딛는 여행자를 위해 응원을 보낸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또 찾아왔다. 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었던 출연료! 타 방송국 음악프로그램의 출연료를 알 길이 없어 답답하던 찰나! 섭외전화를 하면서 구세주를 만났다.
그 사람은 내가 섭외하고 싶은 가수의 소속사 대표였다. 섭외관련해서 대표와 통화를 하는데, 소속사 대표가 출연료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섭외하고 싶은 A 씨는 지금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출연이 어렵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사실 섭외 초반에 프로그램에 관해 먼저 물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뭐라 소개할만한 데이터가 쌓인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한 취지와 만들고 싶은 무대, 아티스트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 (물질적인 것보다는 프로그램 퀄리티로 보답하겠노라 읍소했다)을 말하자 그 대표는, "정말 대단하네요! 새로운 음악프로그램이 생긴다니까 너무 좋습니다." 며 한결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혹시 연락처 필요한 가수 있나요? 소속사 분들은 좀 아시나요?"라고 먼저 묻는 게 아닌가. '아니요! '절대로' 없습니다. 제발 모든 가수들 연락처를 좀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비즈니스 하는 사이에, 너무 내 패를 다 깔 수는 없어서 적당히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음방 제작은 처음이라 아직은 멘땅에 헤딩하기 수준이에요." 뭐 거기서 거기의 대답이지만 그 대표님은 자신이 그럼 메이저 소속사의 핫라인을 몇 명 알려주겠다며, 이 사람들이 실세니 디렉트로 전화하면 섭외가 조금은 수월할 거라 말했다. 섭외할 때 먼저 자신에게 연락처를 받았다 말해도 된다는 든든한 말까지 보탰다. (이후 이 대표님의 연락처로 많은 가수들을 섭외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없냐는 말에, 망설이고 망설이다 물었다. "대표님 혹시 저희 출연료가 업계 기준 많이 적은가요?" 전국 음악프로그램에 다 출연해 본 대표님은 업계 평균+알파라고 대답했다. 기본 출연료는 거의 비슷하고 최고 금액은 약간 더 많은 편이라고. 정말 진부하지만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어쩜 그리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을까. 이후로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일부러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이정표도 없이 표류할 뻔했다.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성을 들여 한 번 더 소개하고 싶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