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엉덩이는 소중하니까.
언젠가 가수 아이유가 콘서트 관객들에게 방석을 선물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저 친절한 가수의 역조공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넘어서 아이유의 섬세함에 무릎을 쳤다. 왜냐? 덕후들을 알 것이다. 콘서트나 공연, 행사 등등 "내 가수"를 보러 가는 자리가 그리 안락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덕후에게 안락함은 사치다. 안락함이 무엇이랴. 그게 뭣이든 내 자리 하나만 있으면 그것이 천국이다. 그 자리가 가시방석이라 해도 공연을 보는 순간은 극강의 행복을 맛볼 테니까. 정서적인 행복이 몸을 지배할 때는 알지 못한다.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는 것을. 공연 뽕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하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난다.
우리 프로그램은 녹화를 2주에 한 번씩, 한 번에 2주 치 분량을 떴다. 이유는 진행자와 출연자들이 모두 서울에서 (혹은 타 지역에서) 오고, 세트제작에서부터 음향팀, 조명팀 등등 거대 스텝이 움직이는데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뽑기 위해서다. 1회 녹화에 대략 2시간이 걸리고, 1일 녹화에 인터미션을 포함해 4시간 남짓이 걸린다. 우리 프로그램은 지역 프로그램인 데다가 음악 방송으로는 후발주자라 우리 나름의 전략은 일명 "모공존"으로 무대와 객석 사이가 가수들의 모공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자리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팬이라면 누구나 그 자리에 앉고 싶어서 소위 목숨을 걸 정도로 가까운 자리는 행운의 상징이자, 아직도 팬들 사이에선 회자되는 초절정 앞자리였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날의 검이 있는 법. 모공존에서 "내 가수"의 얼빡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쿠션이 미미하게 있는 일반 의자에 4시간을 앉아있는 게 보통일인가. 또 내 가수 순서는 지나갔는데, 앞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중간에 조기 퇴근도 하지 못한다. (좌석 배정 시, 조기 퇴근 하지 않기로 서약 후 착석) 서로에게 윈윈이었던 모공존은 매회 절찬리에 매진됐고, 4시간 동안 앉아있는 게 힘들기는 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작진이 그 자리에 앉을 일이 있었는데,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야말로 엉덩이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엉덩이가 저릿저릿하게 저려오다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아무 감각이 없을 만큼 엉덩이가 아프고, 이어서 허리 통증까지 밀려왔다. 오 마이 갓. 불편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니, 관객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방송국은 돈이 없다. 우리처럼 온갖 예산을 탈탈 털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팀에서는,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흑 ㅠㅠ) 우리 프로그램을 아껴주는 관객들에게 꽃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쾌적함은 주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니, 그다음 녹화 때 부턴 관객들 눈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나보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