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눈 뜨고 코 베이기
리허설마다 가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인이어가 계속 끊겨요.”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장비를 점검하고 선을 갈아보고, 배터리를 바꿔도 봤다. 그런데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도무지 해결책을 찾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음향팀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작가님, 가수들이 왜 자꾸 인이어가 끊긴다고 하는지 아세요?”
“왜 그런지 알려드릴까요?”라고 말했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그 태도에 살짝 기분이 상한 우리는, 마지못해 심드렁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정말이지, 귀를 의심할 만한 ‘비밀’을 듣게 됐다.
“가수들은 다 청력에 문제(사실은 이보다 더 심한 표현으로 말했지만)가 있어서 그래요.”
그의 설명은 이랬다. 가수들은 늘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고, 시끄러운 공연 환경에 상시 노출되며, 이어폰을 장시간 사용하기 때문에 특정 음역대 청력이 많이 손상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이어가 그 음역대의 소리를 전달하면 잘 들리지 않는데, 그걸 기계 탓으로 돌린다는 얘기였다. 요약하자면, 가수들의 청력이 나빠 인이어가 잘 안 들리는 걸 ‘장비 불량’이라고 탓한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괜히 귓가에 다가와 “이모, 나 사실 요정이야”라고 말하던 어린 조카가 떠올랐다. 현실감이 사라지고, ‘지금 이 대화가 정말 녹화 현장에서 오가는 말이 맞나’ 싶은 황당한 순간이었다. (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전문 음향 엔지니어조차 아니었다.)
물론, 귀를 많이 쓰는 직업 특성상 청력 저하는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 귀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당사자일 텐데, 왜 유독 우리 프로그램에서만 인이어 문제를 제기했을까? 결국 기술적인 해결책은 찾지 않은 채 대책 없는 너스레를 늘어놓은 셈이었다. 그 무책임함에, 담당 PD와 나는 직접 답을 찾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때 문득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집안일이든 뭐든, 매번 안 해도 좋지만 할 줄은 알아야 대접을 받는 거야. 모르면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게 돼.” 그 말이 왜 하필 이 순간 떠오른 건지, 스스로도 웃겼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담당 PD는 온갖 인맥을 총동원했다. 연락이 끊겼던 동기 목록까지 뒤져, 현재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거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염치 불고하고 연락했다. 다행히 잘 나가는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동기 한 명이 사정을 듣더니, 이렇게 물었다.
“혹시 무대 주변에 인이어 컴바이너(In-ear Combiner, 인이어 증폭기) 세팅해?”
인이어 컴바이너가 없으면 신호가 끊겨 무대에서 인이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장 음향팀에 문의하니, 돌아온 대답은 “그런 기계는 없다.” 문제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1년 가까이 우리를 괴롭히던 고질병은, 알고 보니 장비 하나로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다음 녹화 때 인이어 컴바이너를 설치하자, 가수들의 인이어 끊김 요청은 거의 사라졌다. 잘못했으면 모든 가수를 ‘청력 저하자’로 오해할 뻔했던 상황이었다.
물론, 이런 황당한 일은 이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날 퇴근길에 맥주를 기울이며 허탈함과 씁쓸함을 달랬다. 그래도, ‘근본 없는 음악 프로그램 제작기’가 조금씩 근본을 찾아가는 듯해 묘한 뿌듯함도 있었다. 참고로, 그 음향팀 담당자와는 이후 여러 문제를 겪은 끝에 깔끔하게 ‘굿바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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