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요. 없어요. 안 돼요.

부제 :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by 박희영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은 진리인 듯싶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고, 할 수 없음에 괴로워졌기 때문이다. 음악프로그램은 메인이 '음악'이다. 특히 인디밴드, 인디 가수를 주 출연자로 삼은 우리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라이브 연주가 제작의 핵심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보컬과 MR 이 아니라 <보컬과 세션> <보컬을 포함한 2인 인상의 밴드>가 중심이다 보니, 제작과정도 쉽지 않았다. 제작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밴드 멤버가 5명이면 5개의 채널로 녹음을 한다. 기타는 기타채널, 베이스는 베이스 채널, 보컬은 보컬 채널 등, 각각의 독립된 채널을 잘 어우러지게 믹싱 해서 하나의 완성된 음원을 만든다. 예를 들면 나무젓가락 5개가 본드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고무줄로 칭칭 묶어 놓아서, 나무젓가락 가운데 하나가 상했으면 다른 멀쩡한 나무젓가락으로 교체할 수 있게 만든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5개의 채널이 하나로 묶여 있지만 각각의 사운드를 별도 소스로 녹음해 사운드를 믹싱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프로그램은 생방송이 아니다 보니 공연 중에 실수를 하거나 사운드 믹싱이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각각을 녹음한 원본 소스를 받아서 다시 믹싱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토튠(Auto-Tune)-보컬이나 악기의 음정을 자동으로 조정하거나 왜곡 효과를 내는 기능' 과는 조금 다른, 현장 녹음 사운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정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출연자별로 사운드를 녹음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몰랐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녹화를 잘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밴드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타 사운드가 현장에서 좀 낮게 녹음된 것 같은데, 기타 녹음 원본을 보내주면 볼륨을 조금 키워, 다시 믹싱 해서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확인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연스럽게 통화를 마쳤지만 나는 밴드가 요청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쨌거나 나는 모르지만,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선배피디는 알 것이라 굳게 믿으며 (알 것이길 바라며) 열심히 메모한 내용을 들고 나는 또 담당 피디에게 갔다. 이러저러한 내용을 전달했더니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응? 우리는 멀티 소스 아닌데? 우린 현장 믹싱본 하나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다시 (후에 내가 이 내용을 완벽히 이해한 후에) 정리하자면, 우리에겐 다섯 개의 나무젓가락을 본드로 붙여놓은, 그래서 중간에 썩거나 부러진 나무젓가락도 따로 떼 버릴 수 없는 나무젓가락 뭉터기뿐이란 말이다. 고로 수정은 불가했다. 도대체 이 내용을 어떻게 밴드의 소속사에 전한단 말인가. 눈앞이 하얘지고 이토록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마음이 급했던지, 소속사 매니저가 다시 전화가 왔다.



"작가님! 혹시 확인되셨어요? 방송일정이 촉박하니까 저희가 서울 가자마자 믹싱 수정해서 보낼게요"


다급한 매니저와는 달리 창백한 나의 목소리...


"매니저님...."


착 가라앉은 나의 목소리 탓인지, 매니저는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듯했다.


"왜요 작가님? 무슨 일 있어요? 녹음이 잘 안 됐나요?"


"녹음은 잘 됐는데요.... 또 현장 믹싱도 잘 됐는데요... 저희는 멀티소스가 아니라 현장 믹싱한 하나의 파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매니저도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도 못했겠지. 당연히 멀티 소스일 거라 생각해서 요청조차 하지 않았겠지...(후에 알게 된 건데, 음악방송에서 현장 믹싱한 하나의 파일 밖에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매니저는 짧은 탄식과 함께 “왜요?......”(흑흑)하며 전화를 끊었다.

절망에 휩싸인 매니저의 목소리가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귓가를 울렸다. 그래서 나는 알고 싶었다. 이들이 원하는 다채널 녹음법을. 하지만 안다고 시스템이 하루 만에 바뀌겠는가. 그로부터 한참을 나는 가수들의 요청사항에 이렇게 말했다.




"없어요" (미안해요)


"안 돼요" (미안해요)


그리고 이 말은, 왜 안 될까, 왜 없을까란 여운을 남겼고, 지금은 “다 됩니다. 다 있어요”로 바뀌게 됐다.

(이 에피소드는 정식 프로그램 론칭 전, 현장 공연을 주목적으로 하던 공연의 상황입니다. 방송이 메인이 아니라서 시스템이 부족한 게 많았어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keyword
이전 04화프롬프터가 뭐예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