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프터가 뭐예요? 2

부제: 가내수공업으로 한 땀 한 땀

by 박희영

조악하게 출발한 음악프로그램에 인디계에서 내로라하는 밴드가 출연한 데에는 신곡홍보가 한 몫했다. 2016년에는 요즘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던지라 소박하기 그지없는 무대일지라도 TV로 송출되는 채널은 좋은 홍보 수단이었을 것이다. 케이스마다 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음원 발매 이전에 촬영을 한다. 녹화에서부터 제작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있으니 음원 공개일을 방송이로 잡는 경우도 많고, 음원공개 즉시 방송이 되도록 날짜를 잡는 편이다. 고로 아티스트들은 가사를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숙지했더라도 혹여나 신곡무대에서 실수를 줄이고자 가사 프롬프터를 대부분 사용한다.



이 아티스트 역시나 신곡을 발표하는 무대인지라 가사용 프롬프터를 요청했고 (그땐 몰랐지만 가사용 프롬프터는 음악프로그램에는 필수 장비다) 음악 방송 제작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는 프롬프터 세팅이 안 된다고 전달했는데, 당시 피디였던 선배는 프롬프터 대신에 사용할 "무언가"가 우리에겐 있다고 했다.



'네? 있어야 할 것들도 다 없는 우린데, 프롬프터를 대체할 무언가가 우리에게 있다 굽쇼?'


반신반의하며 기대했는데, 우리에게 정말로 그 대체제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은 "대자보"였다.




대자보라니! 대자보라니이이이??!!!!



요즘 세대는 알 길이 없는 대자보의 존재를 선배 입에서 듣다니! 잊고 살던 단어였지만, 선배가 대자보라고 하는 동시에 어떤 사이즈가 어떤 용도로 쓰일지를 선명히 떠올랐다. 대자보는 <1930년대 초기 소련에서 정치선전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던 벽보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문화대혁명기에 확산된 벽신문 유형의 대중언론 매체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대학가에서 활발하게 나붙기 시작했다>라고 포털 백과사전에 올라있는데, 8-90년대 대학생활을 한 우리에게는 단순히 벽에 붙는 모든 게시물이 아니라 특정 사이즈의 특정 필체가 담긴 커다란 종이 한 장. 그것이 대자보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혹시 기억하려나 모르겠지만, 80년대 국민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기억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괘도" 사이즈의 종이 말이다. 선배의 추진력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프롬프터를 대신할 대자보 용지를 사고, 가사를 쓸 매직과 가사를 적을 담당자까지 일사천리로 배정했다.




그런데 대자보를 써 본 적 없는 요원이 이 일을 맡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다른 방송에서는 늘 해오던 대로 하던 일만 하면 되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늘 새로운 무언가를 시키고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하는) 일까지 해야 하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대자보 작성을 담당한 요원은 나름의 복수를 했던 건지, 정말로 악필이었던 건지, 신곡 가사를 추사 김정희 선생도 따라 쓰지 못할 흘림체로 완성했고, 그 대자보를 들고 오는 순간 녹화장은 정적과 분노가 휩싸였다.




'음악 프로그램 제작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모든 순간, 참 하나도 쉬운 일이 없다 싶었다.'



나름의 불만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어린 담당자도, 이 상황에서도 음악프로그램을 한 번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도, 우리 프로그램을 무슨 80년대 분교 녹화쯤으로 기억할 저, 나의 최애 가수도... 창피함과 절망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방송가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불문율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컬러 COLOR BAR(정규방송 송출 전후 수상기에 수신되는 전파의 화면이나 음성의 수신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시간)는 안 나간다"는 말이다. 어쨌든 녹화도 방송도 나가야 하니 힘을 냈지만, 총제적인 난국 안에서 녹화는 시작됐고, 나는 정말이지 최애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나 가족 대소사에 친인척들이 모이면, 불행 배틀을 벌이듯이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어렸을 적 나는 그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어른들은 왜 자꾸 못 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거야?'



그때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그때보단 가난하지 않으니까 하는 거야. 그 시절은 겪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자랑하는 거지. 지금도 여전히 가난하다면 그 얘기를 어떻게 하니. 어른들의 훈장 같은 거야."



라고. 엄마의 이 말처럼 지금 내가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이 또한 가난한 시절의 에피소드가 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치욕스러울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때 이런 적도 있었잖아 하고 깔깔 웃는 하나의 추억이 됐다. 그리고 나는 일 년 후, 그 팀을 다시 섭외했고,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고 출발한 우리 프로그램을 자랑했다.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그날은.





(대부분 방송사에서는 뉴스 및 프로그램 진행에 프롬프터를 사용합니다. 이 프롬프터는 뉴스룸 테이블 아래 있거나, 정면 카메라에 설치해서 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음악프로그램 녹화를 위한 가사용 프롬프터 설치는 무대에 모니터를 세팅해서 하는 방식이라서 이 방식에 대해 무지했던 에피소드입니다)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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