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나와 함께 몸빵 해서 죽이는 음악프로 만드실 분~!
누군가 말했지. “모르는 게 약이다.”라고.
나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지 알게 됐다.
알면 알수록 허술함이 보였고, 그 허술함을 메우려 하면 할수록 욕심이 들끓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진짜 음악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마음 하나로 매달렸지만, 하면 할수록 벽이 많았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말하자면 ‘행사와 방송의 그 중간쯤’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시청자에게 선물하듯 마련된 콘서트.
무대는 있었지만, 쇼는 아니었고, 촬영은 했지만, 방송이라 부르기엔 어색했다.
행사라 하기엔 구성이 섬세했고, 방송이라 하기엔 시스템이 헐거웠다.
그러니까 딱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
처음엔 작가도 고정이 없었다.
그때그때 ‘이번엔 누가 여유 있대?’ 하며 돌아가며 맡는 구조였다.
누군가는 시큰둥했고, 누군가는 “그거 아직도 해요?”라며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그거’를 맡은 사람이 나였다. ( 너무너무 여유 넘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처음엔 그저 손쉽게 하고 돈이나 버는 꿀알바 정도로 생각했다.
‘행사 방송이라니, 애매하겠군.’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상하게 재밌었다. 또 어쩌면 나의 로망이던 음악프로를 간접경험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담 작가가 됐다.
‘그래, 이거 제대로 키워보자.’
그때부터 나의 작은 욕망이 시작됐다. 섭외 라인업도 공들이고, 새로운 시도를 뭐든 해봤다.
내 머릿속은 온통 새로운 아이템으로 가득했다.
‘게스트를 한 명 더 부르면 공연 밀도가 살 텐데…’
‘오프닝을 밴드 사운드로 열면 감정선이 달라질 텐데…’
‘무대 세트를 살짝만 더 바꾸면 방송 퀄리티가 확 달라질 텐데…’
노트북 메모장엔 매일 밤 “뭐 할까?”가 쌓여갔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해줄 피디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결국 선배 피디를 찾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당시 일을 같이 하고 있던 피디는 cp:책임피디 정도였지 정말 제작을 성심껏 같이 할 프로듀서의 역할은 아니었답니다)
“선배, 나 이거 진짜 음악프로그램처럼 만들고 싶어.
제발 젊은 피디 한 명만 붙여주세요.
제가 다 할게요. 구성, 섭외, 현장, 리허설 다요.”
선배는 한참을 듣다가 커피를 들고 짧게 말했다.
“일할 피디가 없어.”
“없어요? 방송국에요?”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어.”
“왜요?”
“다들 다큐나 특집 하고 싶어 하지. 이런 음악프로 하겠다는 사람은 없어.”
“그래도 한 명쯤은 좋아하지 않을까?”
“없어. 젊은 피디들은 다 싫어해.”
와르르쿵쿵. 마음에 비수가 꽂혔다.
‘젊은 피디들은 다 싫어해. 싫어해 싫어해 싫어해...' 메아리처럼 울리는 말 때문에
그 뒤로는 복도에서 피디들을 마주칠 때마다 괜히 눈을 피하게 됐다.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싫어서겠지'
'아니 왜 싫어?!! 음악 프로가 얼마나 좋은데?'
'지루한 다큐보다 새끈 한 음방이 얼마나 좋아!'
'콘서트도 보고 음악도 듣고 얼마나 좋아?!!!'
나중엔 나 홀로 '이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이유'라는 대하소설을 쓸 정도로 "싫어해"라는 말에 몰입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젊은 피디”를 만났다. '음악프로를 싫어'한다는 젊은 피디 중에 한 명이었다. 적당한 사회생활로 눈인사를 하고 손을 씻는데, 그 피디의 입에서는 놀라운 말이 나왔다.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