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와 대타사이

부제 : 우리가 출연자를 고르는 기준이 바뀐 날

by 박희영

방송 작가의 촉이라는 게 있다. '아, 이 밴드는 뜨겠다.' 하는 근거 없는 확신 같은 것. 요즘 가장 핫하다는 라이징스타 밴드의 섭외를 막 끝낸 날 나는 내 촉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르고 있었다.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를 통째로 집어삼킨, 그야말로 가장 핫한 라이징스타 밴드의 무대를 실물로 꼭 보고 싶었는데 우리 무대에서 볼 수 있다니, 정말 좋지 아니한가. 당장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자랑하고 싶었지만, 이 밴드는 이제 막 떠오르는 스타라, 진짜배기 마니아들이 아니면 "아, 그 밴드?"하고 무릎을 탁 칠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짜릿한 기쁨을 온전히 나눌 사람 없이, 혼자 책상에 앉아 벅차오르는 마음을 꾹꾹 누를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섭외는 단순한 성공이 아니었다. 우리처럼 작은 방송이, 그것도 내가 먼저 알아본 밴드를 무대에 세운다는 건, 일종의 '전략적인 승리'나 다름없었으니까. 앞으로 펼쳐질 완벽한 시나리오에 혼자 김칫국을 마시며 행복해했다. 그 전화가 울리기 전까지는.



"작가님, 정말 드릴 말씀이 없는데… 멤버들끼리 문제가 좀 생겨서요.

도저히 스케줄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D-7, 월요일 오전. 나는 수화기를 들고 멍하니 되물었다.

"네? 멤버 간 불화요?"



학창 시절 조별 과제하다가 싸우고 엎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프로라는 밴드가 내부 문제로 방송 스케줄을 펑크 낸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선배! 이 밴드... 자기들끼리 싸워서 방송을 펑크 냈어요!"


내 황당한 외침에 선배 PD가 툭, 명쾌한 진단을 내렸다.


"라이징 스타는 많아. 뜬 가수가 아니라 뜰 가수잖아!"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화낼 시간이 없었다. 문득 반년 전, 비 오는 날의 허름한 클럽 풍경이 떠올랐다. 관객은 스무 명도 채 안 됐지만, 무대 위 그들은 마치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것처럼 자신들의 음악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 머릿속 ‘언젠가 반드시!’ 폴더에는 실력은 물론, 작은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하던 그들의 ‘태도’가 함께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OO작가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클럽 공연을 몇 번 봤는데, 음악도 정말 좋았지만 무대를 대하는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혹시 저희 무대에 서주시겠어요?"


수화기 너머로 벅찬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벅찬 목소리가 되물었다.


"저희를… 어떻게 아세요?"




그리고 녹화날이 왔다. 새로운 밴드는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들은 마주치는 스태프들마다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구석의 작은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조용히 기타를 조율할 뿐이었다. 까다로운 음향 감독님의 요청에도 "네,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야 너무 감사하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들의 실력과 긍정적인 에너지에, 스튜디오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보컬의 첫 소절이 터져 나오는 순간, 무대 뒤에서 잡담하던 스태프들의 말이 멎었다. 무대 조명을 담당하던 선배는 "저기 보컬한테 핀 조명 하나 더 줘봐. 얼굴 사네."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본무대에 오른 그들은 모든 것을 증명했다.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온몸으로 연주하며 관객들과 호흡했다.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석의 모든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SNS를 켰다. 그리 많은 후기는 아니더라도 ‘이런 보석을 어디서 찾아냈냐’는 칭찬 글 몇 개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날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실력은 스타의 필요조건이지만, 인품과 태도는 스타의 충분조건이라는 것. 약속의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진짜 스타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덕분에 우리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 기준은 그날 이후로 명확해졌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뮤지션’. 조금 까다로운가? 하지만 진짜를 알아보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keyword
이전 16화내돈내산 홍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