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유 [No. 4 개고생, 감사 감사 감사]
조금은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이 것도 내가 겪은 삶의 일부이니.
공식 명칭으로는 Türkiye 튀르키예,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Turkey 터키로 기억하는 이 나라는 민족성이 지극히 강한 나라이다. 2023년은 터키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외교, 정치, 교육, 역사, 경제, 군사, 문화 등 다방면으로 굉장히 많은 정책들과 행사들이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터키 정부는 100주년을 맞아 명칭을 Türkiye 튀르키예로 바꾸는 것을 강력 추진했다. 'turkey'는 영어로 칠면조라는 뜻을 담고 있어 한 나라를 나타내는 명칭으로는 부끄럽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언어인 터키어로 Turkey가 Türkiye로 바뀐 것뿐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Republic of Korea가 'Daehanminguk'으로 국명을 바꾸었다는 것과 같다는 거다. 자신들의 민족성이 너무 강해서 영어 뜻으로 인한 수치와 열등감에 세계에 자신들의 비전을 이루어내겠다는 포부를 담아 2023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공식 국명을 바꾼 것이다. 즉, 튀르키예라고 하나 터키라고 하나 전혀 문제가 없다. 튀르키예가 공식이고, 터키가 비공식이고, 이런 건 없다. 둘 다 같은 나라의 이름일 뿐, 너무 의미 부여하는 듯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애초 터키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정부에서 만든 단순 시선 끌기 홍보용에 불과하다고 평할 정도니까. Turkey건 Türkiye건 발음의 차이도 별로 없을뿐더러 메시지 보낼 때엔 어차피 영어자판(터키어 자판이 존재하나 자모음의 수가 늘어 버튼크기가 작아지면서 터치감이 불편하고 오타가 굉장히 자주 일어남.)을 더 많이 사용하기에 특수문자가 포함되지 않은 Turkey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는 거의 대부분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 이루어진다. 즉, 거의 모든 후보가 "나는 알라의 선택에 의해 이 자리에 섰다."라는 말을 한다. 해석하자면, "나한테 표 안 주면, 너희 다 지옥 가는 거야. 난 알라가 보낸 사람이니까 나한테 투표해."이다. 자신이 당선되기 위해 종교적인 부분을 이용해서, 신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선전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지옥 가기 싫어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한다. 이러한 일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 터키 정계는 신뢰와 믿음이 가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아닌 내가 지옥에 갈지 모른다라는 두려움에 눈이 멀어 강제로 투표를 받아 당선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거다. 당연히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신뢰가 그다지 좋지 않을 수밖에.
또 터키 정부는 굉장히 오랜 시간 고심했다. 종교적인 부분과 세계 트렌드에 대한 충돌로 인한 갈팡질팡 어찌할 줄 모르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이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이슬람이기 때문에 세계 트렌드라 말하는 것들은 이슬람적이지 않다. 국가 외적으로는 동성애, 동성결혼 합법화부터 시작해서 종교통합, AI 인공지능/인조인간 등 세계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혁신적이고 발전적인 정책들을 펼치고 있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인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고, 또 다른 방향으로는 EU(유럽연합)에 꽤 공을 들여 들어가고 싶어 하나 터키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어 EU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내적으로 쿠르드인들과의 갈등, 민심 떡락, 종교와 세계시장의 정체성 갈등 등 다소 복잡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아주 잘 드러난다. 진보성향의 정당은 혁신, 발전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색채는 거의 없고, 보수성향의 정당은 종교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다. 그래서 선거를 통해 알라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당선된 후보자는 공약한 대로 종교적인 정책들을 강하게 시행한다. 그러면, 세계 트렌드를 맞추자는 진보성향의 정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해 실질적 업무는 진보성향의 정당이 그의 이름만 빌려 혁신적이고 발전적인 정책을 시행한다. 그러다가 또 보수성향의 정당이 이대로는 안된다, 이건 신의 뜻이 아니다, 우리는 무슬림! 알라에게로 돌아가자 하면서 그 사람의 임기가 끝나갈 때쯤 또 알라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당선시킨다. 그 사람은 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정책들을 추진하다가 또다시 진보성향의 정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가져오고, 또 임기가 다 할 때쯤 보수성향의 정당이 또 알라의 이름을... 이것이 반복되는 곳이 터키 정부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라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당선된 사람들이 시행한 종교적인 정책들이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 억압시키고, 더 차별시키고,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진보성향의 정당이 쿠데타를 일으키면 국민들이 억압되었던 종교적 정책들에서 조금 풀어진다. 이 오도 가도 못하는 알 수 없는 상황이 길게는 15년에 한 번씩 반복되어 일어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뿐만 아니라 2023년 터키 대선은 굉장히 중요했다. 2023년 초 터키시리아 대지진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았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Recep Tayyip Erdoğan (레젭 타이입 에르도안)의 임기가 끝나가던 시기였기에 20년간 장기집권으로 인한 믿음과 신뢰가 깨져 대지진으로 힘들어하던 국민들로부터 되려 그간의 모든 것들이 다 터져 나오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당선되어 대통령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난리는 2024년 터키 지방선거로 이어지며 민심 개떡락의 원인이 되었다.
아마 내가 이전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다. 터키 내에는 크게 두 개의 큰 그룹이 공존하고 있는데, 바로 터키 민족과 쿠르드 민족이다. 쿠르드 민족은 터키 민족이 건너와 터키가 건국되기 이전부터 살았던, 어떻게 보면 원주민이라 볼 수 있는 민족으로 터키 건국 이후 터키 정부에 대항하여 독립의 의지를 밝혀왔으나 지금까지 무시당해 왔고, 사회에서도 쿠르드인은 철저히 배척당해 왔다. 동시에 주변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도와주면 너희들의 독립을 인정해 주겠다는 솔깃한 유혹에 이끌려 전쟁에 참전했다가 수많은 배신을 당해오며 산 외에는 친구 없는 민족으로 불린다. 그러니까 터키 민족과 쿠르드 민족 간의 갈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 갈등이 터키 민족/터키 정부를 향한 불신으로 번지게 된 사건이 바로 2024년 터키 지방선거다.
2024년 터키 지방선거가 이루어지던 날 나는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친구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투표권이 없었지만, 부모님을 통해서 들은 소식과 인터넷 뉴스를 통해 개표 소식을 나도 같이 보고 있었다. 터키 정부의 중요한 진보/보수 성향의 정당뿐 아니라 쿠르드 민족을 이끄는 정당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쿠르드인들의 차별과 억압을 이겨내자라는 비전을 담아 만들어진 정당이다. 내가 있었던 Van 반 도시는 쿠르드 지역이다. 터키 동남부 지역은 쿠르드인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쿠르드 지역에서의 지방선거는 쿠르드 민족 정당이 이겼다. 그래서 시장이 쿠르드인으로 당선되었다. 이날 저녁에 반 도시의 시내가 축제의 분위기였다. 터키 민족과 터키 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쿠르드가 이겼다는 승리의 빅토리를 외치며 행진했고,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다음날 터키 정부는 모든 투표 결과를 뒤엎고 당선된 쿠르드 민족의 정당의 후보자를 강제로 제명시키고, 에르도안에게 협력적인 정당의 후보자를 당선시키게 된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 민족의 독립 의사를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 쿠르드 민족의 정당이 당선되면 더 갈등이 심해지고, 앞으로의 정치 안정과 국가 안보에도 무리가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 같다.
또 이전에도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쿠르드 민족을 지지하는 정당이나 쿠르드 민족이 만든 정당이 당선되면,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아무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정부에 협력적인 사람을 앉히는 식으로 터키 정부가 일을 해왔다. 하지만, 투표 결과를 당일 뒤엎는 일은 이전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이 소식을 들은 쿠르드인들은 분노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나는 그날을 아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장은 마치 영화 1987을 연상시키는 듯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쟁이었다. 쿠르드인들이 모두 거리로 달려 나와 시위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들고, 최루탄을 던지며 쿠르드인들은 행진했다. 아무리 다른 민족이더라도 사람이고, 국민인 쿠르드인들에게 총을 쏘고, 불을 피우며, 칼로 찌르는 무력 진압의 경찰과 군인들이 보였다.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비명과 물건을 부수고, 건물들이 무너지는 소리로 시내 일대가 폭파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시위의 열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나와 하우스 메이트들은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조용히 기도할 뿐이었다. 시위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나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서 가까운 편의점에 빠르게 다녀오려 밖에 나가보니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다. 시내의 거의 모든 건물이 무너져있었다. 가로등, 전봇대 등 뿌리가 뽑혀 있거나 아예 없는 것도 있었으며, 공원은 정돈되지 못한 채 나무가 뽑히거나 고꾸라진 듯 아수라장이었고, 백화점의 단단해 보이던 콘크리트 외벽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갔으며, 국가기관들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또 집으로 돌아가던 길 집 앞에서는 경찰과 쿠르드인들 사이에서 칼부림이 있었다. 영화는 역시 영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액션 영화, 잔인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한 생사를 결정짓는 위험한 칼부림이었다. 서로의 살덩이가 찢겨 피가 터지고 살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경찰과 권리를 되찾겠다는 쿠르드인 사이에서 나와 하우스메이트는 편의점으로 돌아가 상황을 보다가 나아지면 그때 들어가자라고 했을 정도다.
쿠르드인들은 용사다. 돌아온 답은 배신 뿐이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주변국의 유혹에 이끌려 수많은 전쟁에 참전했고, 거의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렇기에 쿠르드인들은 한 번 시작한 전쟁은 끝을 본다. 이스탄불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군용 헬기와 장갑차를 끌고 시내를 돌아다녔음에도 쿠르드인들은 폭죽을 사서 자동차를 터트리거나 장갑차를 점거해 직접 끄는 등의 어마어마한 일들을 벌였다.
Van 반 도시에서 일어난 쿠르드인들의 소식이 주변 도시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쿠르드의 수도라 불리는 Diyarbakır 디야르바크르에서도 터키 정부를 향한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쿠르드인들이 모여사는 터키 동남부지역이 소식을 듣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터키 정부는 이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밀고 나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국내에서 일어난 일, 외부에 들키지만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주변국으로도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반 도시로 여행 오던 이란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길거리에 자주 보이던 이란 사람들이 이날 이후 눈에 띌 정도로 확 줄었을 정도다.
결국 터키 정부는 쿠르드인들의 말을 들어주게 된다. 쿠르드인들은 이 날을 승리의 날이라고 부른다. 수천 년간 독립운동을 해왔지만, 들어주지 않고 무시로만 일관하던 터키 정부를 이겼다고 생각한다. 이날 쿠르드인들은 모두 손가락으로 V(브이)를 만들어 소식을 전했다. 승리의 빅토리였다.
그래서 터키에서 함부로 손가락으로 V(브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승리의 브이는 과거 쿠르드인들이 터키 정부 또는 터키인들로부터 승리했을 때 사용하던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 이런 결과가 일어남으로 쿠르드 민족은 민족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아마 터키는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진보와 보수 성향의 정당이 갈등하고, 쿠르드 민족과 터키 민족과의 갈등, 국내와 국외적 요소로 인한 갈등, 종교와 세계 트렌드로 인한 갈등. 아마 날이 갈수록 더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짧게 터키 정치를 소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터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