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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Dec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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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유 [No. 4 개고생, 감사 감사 감사]

  추운 겨울 어느 날, 나는 친구가 이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와줄 수 있겠냐는 말에 뭐 짐 옮기는 것뿐이겠지라는 생각을 그대로 날려준 터키에서의 이삿날이었다.


  친구 집은 꽤 잘 사는 편이었다. 복도가 집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로 큰 방 4개(3+1)에 부엌, 화장실이 복도 옆으로 딸린 꽤 큰 집이었다. 친구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지만, 이삿날 도와달라는 연락에 처음으로 친구 집에 가볼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은 1+1로 손님방 1개, 큰 방 1개 해서 6명의 남자가 살기엔 엄청 좁고, 작은 집이었는데, 방 4개나 되는 집은 역시나 컸다. 들어가자마자 와! 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그만큼 집세도 비쌌다. 내가 처음에 터키에 도착해 구한 집이 3천 텔레였는데, 이 집은 들어보니 6천 텔레 정도라고 들었다. 우리 집은 6명이서 1+1 집에 사니까 각자 N분의 1로 감당해야 할 집세가 싸졌지만, 친구 집은 가족들이랑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들끼리 시내에 살고 있는 거라서 인당 천 텔레 이상씩 감당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사를 한다고 하면, 이삿짐센터가 있어서 연락하면 엄청 큰 트럭이 와서 짐을 싣고 가거나 입주청소 서비스를 신청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청소를 받는다거나 이런 좋은 서비스들이 있다. 근데 터키는 그렇지 않았다. 내 친구도 그랬다. Van 반 도시가 타 대도시에 비해 서비스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이스탄불이나 앙카라도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은 그랬다.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을 이사하는 본인이 해야 했다.

  이삿짐 옮겨주는 트럭 없다. 이삿짐 옮길 사람 없다. 청소해 줄 사람 없다. 그냥 본인이 직접해야 한다. 나도 이 날 고생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옮겨갈 집까지 거리가 꽤 있어서 친구들이 며칠 전에 트럭을 알아본 것이다. 짐만 딱 실을 수 있게 중형 사이즈의 트럭을 대여했다. 그런데 이제 시간제라서 딱 빌린 시간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4-6시간 정도를 빌렸던 것 같은데, 그 시간 안에 이사를 완벽하게 마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날 비가 왔다. 진짜 힘들었다. 


  형제 친구들이었다면 그다지 짐이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자매들만 살고 있었기에 옷이나 화장품, 침대, 가구 등 꽤 짐이 많았다. 비도 오고, 시간도 없고, 나와 우리 하우스메이트 형제들이 달려 들어서 3층에서 0층으로 그리고 트럭으로 짐을 옮겼다. 자매들은 비교적 작고 가벼운 것들을 옮겼고, 나를 비롯한 형제들은 침대, 세탁기, 냉장고, 가스, 책상, 책장, 옷장, 장판 뭐 많은 거 옮겼다. 그리고 트럭이 꽉 차서 못 실은 것들은 직접 집으로 들고 갔다. 

  이게 그 현장의 사진이다. 정말 힘들었다. 

  또 이삿집으로 짐을 옮겨야 했다. 이삿집은 5층에 있었다. 3층에서 짐을 내려서 차로 옮겼다면, 이제 참에서 짐을 내리고 5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침대와 세탁기, 냉장고, 가스, 책상, 책장, 옷장, 장판 등 많은 것들을 들고 올라가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만 그런 거 없다. 계단, 무조건 계단. 심지어 계단이 너무 좁고, 복도가 좁아서 침대나 옷장 같은 거는 세워서 들고 올라갔다. 우리가 계속 곡소리를 내니까 이웃 건장하신 아저씨들이 도와주시기도 했지만, 오전 일찍 시작한 이사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나는 세탁기가 그렇게 무거운 줄을 몰랐다. 와우! 에어컨도 있었고, 냉장고도 있었는데, 세탁기가 레전드. 요즘 신식 세탁기가 아니고, 구형 옛날 세탁기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엄청 무거웠다. 그래서 건장하신 이웃 아저씨가 밑에서 업고, 남자 4명이 옆에서 붙잡고, 남자 2명이 뒤에서 밀어주며 0층에서 5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이때 세탁기 안에 뭐가 들어가 있었는지 아니면, 냉장고 문을 테이프로 붙였는데도 문이 열린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뭐가 터졌다. 흰색 가루가 계단 온 사방에 터져가지고 치우느라 또 힘들었다. 비가 와서 바닥이 젖어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봤고, 특유의 레몬 냄새가 나서 레몬향 가루세제가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 날은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바로 집에 가서 잤다. 스트레칭을 하고 짐을 옮긴 게 아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근육의 이완과 수축으로 다음 날 온몸에 알뱄다. 심지어 비까지 왔어서 감기가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감기에는 걸리지 않았다. 




  친구의 이사는 이전부터 예정된 처사였다. 갑작스러운 소식보다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던 것 같다. 왜냐면 나와 만날 때마다 언젠가부터 항상 내게 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에이터 뒤로 쥐구멍이 보이는 것 같아. 쥐가 사는지는 모르겠고, 큰 구멍이 있는데, 거기로 쥐가 지나다니는 것 같아. 나는 못 봤는데, 룸메이트가 봤대. 어떡하지?" 처음에는 추측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오늘 쥐를 봤어. 방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고 불을 켰어. 그런데, 쥐 엉덩이 두쪽과 내 눈이 마주쳤어. 너무 징그러워!! 미쳤어." 하다가 이제는 "아니, 밖에 나갔다 왔는데, 분명 내가 설거지를 하고 나갔어. 집을 다 치우고 나갔어. 그런데, 집에 돌아가보니까 작은 공 같은 게 집에 뿌려져 있는 거야. 보니까 그게 쥐똥이었어. 그냥 바닥에, 침대에, 책상에, 옷에, 빨래에, 그릇에, 컵에 다 있어. 쥐똥이 너무 많아. 바퀴벌레도 봤어. 나 못 살겠어." "그리고, 개미도 있어. 집에 개미 나오면 큰 일 나잖아. 큰 일 난 것 같아." "아니 얼마 전에 친구가 집에 놀러 왔거든, 부엌에서 같이 요리를 하고 있었어. 근데, 뜯긴 천장 위로 수수수수, 수수수수, 소리가 들려. 그리고 쥐가 보여. 친구한테 들키기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소리 감추려고 수다도 떨고 그랬는데, 큰 일이야."


  역시 대한민국, 청정했다. 또 다른 친구 집에 가서 잔 적이 있는데, 밤에 화장실 가려고 눈을 떴다가 바로 앞에 쥐가 있는 것도 봤고, 거미가 사는 곳도 있었고, 엄청났다. 다시 한번 한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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