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바다를 건널 수는 없다. 조그맣고 연약한 날개로 그 먼 망망대해를 날아가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엄청난 비와 함께 폭풍우가 몰려오기도 하고, 더 거센 태풍이 닥쳐올 수도 있다. 뜨거운 태양이 하루종일 내리쪼일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다.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는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우리의 인생이 어쩌면 나비와 같은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흐느껴 울고 있는 남편의 어깨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고, 포장마차에는 이웃집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던 건 술 취해 울고 있는 내 남편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시선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그가 울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것, 어쩌면 평생 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참혹하게 만들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본인이 울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리라는 예감이었다. 포장마차의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는 중년의 남자는 불쌍했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의 상처나, 감출 수밖에 없는 삶의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건너지 못하는 바다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제주 왕나비가 바다를 건너가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저 작은 나비가 쉬지도 않고 수백 킬로미터의 바다 횡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고, 그리고 생각했다. 나비가 바다를 건너다니…. 세상에는 저런 거짓말도 있구나. 그러자, 내가 같이 살로 있는,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라는 남자가, 내게 기생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별것 아닌 것처럼도 여겨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거짓말들 중에, 내가 꿈꾸었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거짓쯤은 별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그 넓은 바다를 건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상상으로라도 망망대해를 건너기를 희망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속고 살아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기에, 꿈속에서라도 이룰 수 있기에,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그 꿈이라도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위험해. 이걸로 문신을 했다간, 자넨 평생 바다 위에 있어야 할 거야. 자네 같은 사람이 이걸로 문신을 했었지. 얼마 후에 바다에 나가봤더니 어떤 사람의 팔과 다리가 완전히 소금에 절여져서 바다에 떠 있더군. 몸통이 없는데도, 팔과 다리는 계속 날갯짓을 해대고 있었어. 내가 새겨준 문신도 사라져 버렸더군. 그냥 자리만 풀 파여 있는데, 날개가 찢겨진 자리가 선명해. 너무 오래 난 거지. 나비한테 바다는 너무 넓단 말이야. 그 사람도 자네처럼 한국 사람이었는데…. 참 안 됐지.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나비 문신을 했단 말야. 그리고 바다로 갔는데, 팔과 다리밖엔 안 남아 있었어. 그 한국 사람의 몸통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넓은 바다를 건너기 위한 날갯짓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팔도 잃고 다리도 잃고 주어진 시간도 잃고 마음도 잃고 심지어 영혼도 잃어버릴 수 있다. 이제 다 이상 날갯짓을 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그저 해안에서 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바다를 건너려 하지 말자. 그깟 바다 건너지 않아도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날개가 찢어지기 전에, 이제는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자. 그곳에서 나머지 주어진 시간이나마 스스로를 위로하며 날갯짓을 멈추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건널 수 없는 바다를 건너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