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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허물이 보이는 이유

by 지나온 시간들

타인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나의 허물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했던 친구의 허물을 탓했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친구의 허물이 보인 것이 나의 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친구의 허물이 보였던 것일까? 허물이라는 것은 옳고 옳지 않음의 기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기준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될 뿐이다. 그 기준에 비추어 그 친구를 판단하니 허물이 보였던 것이다.


나의 기준엔 나의 편견과 선입견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니 타인의 허물을 오로지 나의 기준에서 결론지어버리고 말게 된다.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의 기준에서 본다면 나 또한 많은 허물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타인이 어떠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나 상황이 있을 것이고,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그러한 말과 행동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옳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이 연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형편과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가에 따라 그를 판단해버리고 만다. 그로 인해 그의 허물을 탓하고 비난하고는 한다.


타인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의 기준으로, 그 기준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 채, 타인의 상황과 형편도 모른 채 그를 판단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허물이 될 수밖에 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 자신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타인의 상황과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오직 나의 좁은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된 기준으로, 그 기준이 전부인 것처럼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타인의 허물에 대해 탓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허물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허물이 있다는 뜻이고, 타인의 허물이 크게 보인다는 것은 나의 허물 또한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타인의 허물이 점점 보이지 않을수록 나의 세계는 점점 커지며, 나 자신의 시야가 객관적이 되어 가는 것이고, 나의 좁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얼마나 주관적으로 타인을 판단하는지, 나 자신이 얼마나 좁은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지, 나의 허물이 무엇인지, 그러한 나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섣불리 분별하고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을 알게 된다면, 나의 허물이 어떤 것인지, 왜 그것으로 타인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타인의 허물이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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