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주인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나 자신의 삶을 내가 주인이 되어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그 소중한 시간을 진정 나 자신을 위해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하루종일 그토록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정미경의 <타인의 삶>은 자신이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이름표에 적힌 그 남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런 생각들. 그날, 사실 나도 꼭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던 건 아니야. 그저 낮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네가 전화를 하는 동안 그 다큐를 보고 있는데, 그 화면 속의 삶이, 오늘 하루 내가 살아온 시간, 내일 똑같이 살아내야 할 시간이 이면처럼 보였어. 미친 듯, 무서운 속도로 달려야만 하는 이 삶의 이면 말이야. 저 풍경 속으로 한번 걸어가 보고 싶다, 참 단순하게 그런 마음이 들었지.”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은 나와 어느 정도 관계되어 있는 것일까? 혹시 나와는 그리 상관없는 사람과 일을 위해 그 소중한 시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아무런 의미 없이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것도 묻고 싶지 않다.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 모르핀 앰플 때문인지, 수술 끝에 숨을 거둔 쉰세 살 남자 때문인지, 꽃구경을 끝내 가지 않겠다던 게으른 연인 때문인지, 그날 나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던 N교수 때문인지, 어둑한 화면을 흘러 다니던 인파들 때문인지, 미정의 전화 때문인지, 어둑한 화면을 가득 채우던 만월 때문인지, 차창에 들러붙던 꽃잎 한 장 때문인지 현규인들 알 수 있을까. 그만 가. 나는 현규의 등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손바닥이 무얼 말하는지는 그가 읽어낼 일이다.”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많은 순간들 중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런 많은 순간과 사람들 틈에서 나의 생각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이킬 수 없을 때의 후회는 후회가 아니다. 다만 기억의 우물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것이다. 무심하고 어리석었던 시간들은 아주 잘게 쪼개져 연속사진처럼 선명하게 재생된다. 그러고는 여기쯤이냐고, 아니면 어디서부터였냐고, 다만 길이 나누어지기 시작한 그 지점을 손가락해보라고, 다그치고 또 다그치는 것이다.”
내가 선택을 하건, 선택을 당하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일을 하건, 나의 계획과 의지대로 어떤 일을 하건, 그건 모두 나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가장 비겁한 사람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요인을 탓하는 사람이다. 주인의 마음으로 나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기에 나에게 일어나는 것들을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고 있을 뿐이다. 어떠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건 그건 전적으로 나의 삶 속의 일이기에 나의 책임일 뿐이다.
모든 것이 나와 관계되어 있다는 주인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주인공으로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있어 주인의 마음이라면 그 모든 순간들이 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