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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

by 지나온 시간들

어두운 시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운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시공간에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지는 자신의 선택에 의할 수가 없다. 그저 주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단 한 번일 뿐이다. 그 소중한 삶이라는 기회를 시대와 역사가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면 그 슬픈 영혼의 아픔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아픈 역사적 시대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슬픈 영혼들의 진혼곡이다.


“이제 끝이구나, 나는 생각했어. 수많은 그림자들이 가냘프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파닥이며 내 그림자에, 서로의 그림자들에 스며들었어. 떨며 허공에서 만났다가 이내 흩어지고, 다시 언저리로 겹쳐지며 소리 없이 파닥였어. 기다리고 있던 군인들 중 두 사람이 걸어 나가 석유통을 받아 들었어. 침착하게 뚜껑을 열고 몸들의 탑 위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어. 우리들의 몸 모두에게 고르게, 공평하게, 통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까지 털어 뿌린 다음 그들은 뒤로 물러섰어. 마른 덤불에 불을 붙여 힘껏 던졌어.”


힘없고 약한 민중들의 외침은 그저 메아리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떠한 과정도 없었던 죽음뿐이었다. 그토록 허무하게 이생을 작별한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조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습니다. 장전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정말 총알이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도청 앞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향해 한발 쏘아보고 돌아온 야학생도 있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집으로 보낸다는 지도부의 지침을 거부한 건 바로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의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만 17세까지만이라도 억지로 돌려보내는 일에 긴 언쟁과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소년과 소녀, 그들은 현실을 믿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보호해 주며 위해주어야 하는 어른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대는 그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그러한 일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아직 피어나지도 못했던 그 슬픈 영혼들의 아픔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고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하나의 인간이 다른 인간을 판단하고 억압하고 강요하고 죽임을 가하는 것일까? 너와 나는 그저 비슷한 존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소중한 한 인간의 삶 전체를 그토록 허무하게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걸까?


어두운 시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가냘픈 그 영혼들에게는 어떠한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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