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씨앗에서 시작되듯,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아주 조그만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연이 되고, 그것을 시작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씨앗과 같은 우리 생의 아주 조그마한 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일까?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는 이러한 삶의 얽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라도 유적들을 휘감고 탐욕스럽게 커버린 10층 건물 높이의 판야 나무를 본다면 이곳을 떠도는 마성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작디작은 씨앗의 위력. 그것에 떨게 되고 자연스레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 역시 당신의 삶에 날아 들어온 작은 씨앗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 머리 어딘가에 떨어졌을, 그리하여 거대한 나무가 되어 당신의 뇌를 바수어버리며 자라난, 이제는 제거 불능인 존재에 대해서.”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면 그 뿌리의 왕성한 성장으로 인해 주위의 많은 것들이 파괴되기도 한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이 그러한 일을 하리라고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커지는 뿌리로 인해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이곳 타프롬사원에만 남아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 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바람이 휭 하니 불어와 승려의 장삼을 펄럭였고 당신의 땀을 증발시켰다. 승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어찌 보면 뿌리가 주위의 것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한 커다란 뿌리로 인해 주위의 것들이 유지될 수 있다. 그 뿌리로 인해 무너져 내릴 것이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탱될 수 있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처음 우연히 만난 그 인연이 처음에는 소중하여 간절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인연은 점점 커져 상대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게 된다. 비록 그 영향이 불편하고 힘들더라고 그렇게 얽혀 있기에 더 심한 폭풍우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고 싶다.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잘못 건 전화인지도 몰랐다. 당신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여장을 꾸려 앙코르를 떠났다. 당신의 시간이 다시 거꾸로 흐르고 있다.”
뿌리의 영향이 나무 주위의 존재에 부담이 되는 것을 사실일 것이다. 나와 타자와의 상호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뿌리가 주위를 지탱해 주듯, 인간의 서로 간의 얽힘은 더 커다란 폭풍우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