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Aug 18. 2021

미네르바의 부엉이

미네르바(Minerva)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Athena)와 같다.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며 적장녀이다. 올림푸스 12 신 중의 하나다. 그리스의 수도였던 아테네의 수호신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에 있는 아카데미아 학술원 입구 좌측에 석상으로 세워져 있다. 오른쪽에는 아폴론이, 그 아래 하단에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석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위상이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만큼 그리스 시대에서 지혜는 절대시 되었다.


  미네르바는 어머니인 메티스가 만들어 준 황금빛 투구와 갑옷,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전설적인 방패인 아이기스 그리고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승리의 신 니케가 그녀의 시종으로 항상 그녀 옆에서 보좌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엄친딸이다. 그녀의 재능을 능가하는 것은 태양의 신 아폴론 외에는 없다. 제우스의 엄연한 정실부인으로부터 태어났기에 가장 화려한 혈통이다. 다른 사생아들과는 견줄 수조차 없다. 그녀는 뛰어난 지혜와 무력, 불굴의 정의감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우스를 포함한 모든 신들과 인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미네르바를 상징하는 동물은 다름 아닌 부엉이다. 가끔 올빼미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네르바는 왜 부엉이와 함께 했을까? 부엉이가 상징하는 것은 어두운 밤에 빛나는 눈동자다. 이는 다른 사람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밤에도 그녀는 부엉이의 눈처럼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즉 낮이건 밤이건 항상 깨어있는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헤겔은 법철학 강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 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뜻이다. 헤겔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황혼”이라는 단어다. 황혼은 흔히 해가 저물고 밤이 시작되는 무렵을 말한다. 요즘 시간으로 따지면 저녁 7시부터 9시 정도 되는 때이다. 이 시간대에는 밝았던 낮이 저물어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누군가가 저 앞에 나타나면 그가 누구인지 잘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가 사람인지 아닌지, 나를 공격하려고 오는 것인지, 나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된다. 흔히 프랑스에서는 이 시간을 “L'heure entre chien et loup”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아직 낮의 기운은 남아 있지만, 밤의 시간이 다가와 저 앞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윤리학에서 선인지 악인지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헤겔이 “황혼이 저물어야”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철학은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철학은 어떤 미래를 예언하거나 추측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지혜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부엉이는 황혼이 완전히 끝난 뒤 밤이 되고 나서야 날개를 펴서 자신의 주인인 미네르바를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을 대강 알고 있는 상태로 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닌 것이다.  이로 인해 미네르바는 누구나가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에도 확실한 정보를 가질 수 있어 낮이건 밤이건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확실히 모르는 때를 경험하곤 한다.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인 것이다. 내가 마주치고 있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로 확실한 것인지, 그것으로 내가 생각하고 판단을 해도 되는 것인지, 만약 잘못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된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도 일어날 텐데, 지금 알고 있는 나의 지식으로 어떤 결정을 해도 되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일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하는 일이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정녕 의미가 있는 것일까? 판단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왜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나중에야 후회를 하는 것일까? 알지 못함은 본인의 책임일 뿐이다.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