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내가 존재하므로 의미가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있어야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없으면 이 우주 전체도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내가 곧 우주다.
이생을 떠나면 나는 무로 돌아간다. 그 많은 인연들, 그 많았던 일들, 수많은 사물과 사건들, 내가 가지고 있었고 누리고 있었던 것들, 내 주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 내가 지내왔던 시간들,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이 세상도 다 사라지고 만다. 그냥 다 없어지고 만다. 모든 것은 내가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살아가다 보면 가슴 시리게 아픈 일도 많고, 견딜 수 없게 힘든 일도 수없이 겪는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도 나에게 닥치고, 생각지도 않고 상상하지 않았던 일들도 나에게 밀려든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를 억누르기도 하고,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도 많으며, 내가 거기서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도 많다. 눈물마저 흐르지 않을 정도의 아픔도 있고,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도 있다. 나를 무릎 꿇리는 삶의 거대함도 있고, 내가 스스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삶의 무게도 있다. 가끔은 너무 기뻐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일도 있고, 너무 행복해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일도 있다. 너무 만족스러워 바보처럼 나도 모르게 웃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가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살아있음이 그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기에 살아있음에 눈물이 난다. 비록 오랜 세월은 아닐지라도 내가 현존하고 있음에 가슴 저릴 뿐이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그 모든 것을 앞선다. 내가 있어야 모든 것이 있다. 나의 존재 후에 그 무엇이 의미가 있을 뿐이다. 나의 존재 후에 다른 모든 것이 있을 뿐이다. 새벽에 들리는 종소리도 내가 듣는 것이며, 밤하늘의 별들도 내가 있어야 볼 수 있다. 내 주위의 사람들도 내가 있어야 나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 동네 개가 짖어 대는 소리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있어야 그 소리도 들린다.
내가 있어야 나에게 오는 사람도 있고, 내가 있어야 나로부터 가는 사람도 있다. 오는 사람은 오고 가는 사람은 가는 것이다. 나에게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고, 나로부터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게 전부다. 오고 가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맙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싫으면 알아서 떠나는 것이다. 잡는다고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있자고 해도 나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여기 있으면서 나의 생을 충실히 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 바라볼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도, 그 하늘이 다시 생기는 일도, 땅이 무너지고, 그 땅이 다시 일어서는 것도, 내가 여기 서 있어야 가능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이생의 한 복판에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서 있어야 비로소 다른 모든 것이 내게 온다. 따스한 봄바람도, 끝없이 내리는 장맛비도, 타는 듯한 한여름의 햇빛과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도, 온 세상을 덮는 새하얀 눈도 내가 여기 있음으로 가능하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선선한 바람이 나에게 다가온다. 새벽바람이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