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제 원년인 BC 104년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사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흉노족의 포위에 어쩔 수 없이 투항하였던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가 한 무제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남자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궁형”을 당한다. 그의 나이 48세였던 BC 99년이었다. 그 후 그는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하여 옥중에서도 집필을 계속하였다.
그는 당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死有重於泰山 惑輕於鴻毛(사유중어태산 혹경어홍모)”, 이는 “태산보다 더 무거운 죽음이 있는 반면에, 기러기 깃털보다 더 가벼운 죽음이 있다”라는 뜻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후 “이것은 나의 죄로구나, 나는 이제 아무 쓸모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구나” 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울분으로 가득 차서 여기저기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기>라는 책의 저술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남자로서의 삶의 의미를 잃는 그가 어쩌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삶의 가치를 알았기에 죽음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사마천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15년에 가까운 노력 끝에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책인 <사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사마천은 그의 생을 마감한다.
사마천은 그가 죽기 전 이생에 살아 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헛되이 죽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꼭 해야 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알고 있었다. 남자의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을 당하고, 옥중에 갇혔어도 그는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이생에서의 삶이 더 소중했다. 따라서 그는 아무리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들더라도 의미 없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이 너무 소중했고 이를 위해 죽음의 무거움을 알았기에 고난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죽음의 무게를 알고 있었던 사마천의 <사기>는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소중한 그것이 없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그것이 나의 존재의 의의요 가치이다. 이를 위해 오늘의 내가 있고 그리고 또한 내일의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보다도 더 무거운 그것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