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간은 흘러가 버리고 만다. 흘러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흘러간 것은 이미 끝나버렸다.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은 지나간 세월, 어찌할 수 없는 시간들, 그리고 그에 얽힌 인연과 작별을 고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동안 아파왔던 것과 회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삼십칠 킬로그램까지 몸무게가 줄었고,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고통을 호소했다. 아파, 아파, 라고 아이처럼 가느다랗게 비명을 질렀다. 아빠, 나 좀 살려줘, 라고 그녀가 애원하자 무뚝뚝한 아버지의 턱이 덜덜 떨렸다. 덩치 큰 형부는 뒤돌아서서 울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감싸 쥔 채 아가, 아가, 라고 속삭였다. 당신은 자책을 멈추지 못했다. 당신의 존재가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언니, 라고 마침내 입술을 열고 말하려 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누구보다 잘 아는 질긴 인연과 작별을 고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젠간 그동안 쌓여있던 그 얽힘을 풀고 편안하게 인연이 계속될 줄 알았지만, 그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순간에 서 있다. 그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 많은 시간을 어찌해서 흘려보내고만 말았던 것일까.
“오래전 당신이 첫 월급을 타서 선물했던 스카프를 그녀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말없이 돌려주었던 순간을, 당신이 끈덕지게 되돌려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모른다. 당신이 그녀에게서 영원히 돌아서리라 결심했던 순간. 그녀의 표정 없는 눈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결코 읽을 수 없었던 그 순간. 그때 당신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당신 역시 무섭도록 차가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놀라며 발견하는 대신 무엇을, 어떤 다른 방법을 찾아냈어야 했을까. 끈덕지고 뜨거운 그 질문들을 악물고 새벽까지 뒤척이리라는 것을 모른다.”
지나고 나면 그 순간들이 후회될 뿐이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더 베풀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러한 기억만 남아있을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따위, 라고 중얼거리며 당신은 축축한 흙 위에 누워 있다. 회백색 구멍 속의 상처 따위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흙이 들어간 오른쪽 눈이 쓰라리다. 이 모든 통각들이 너무 허약하다고, 당신은 수차례 두 눈을 깜박이며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지나고 나면 별것이 아니었던 것을 당시에는 왜 그리 마음을 쓰고 세상이 어떻게 될 것처럼 유난을 떨었던 것일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그리 연연하고 집착했던 것일까. 이제는 더 이상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편안하게 잘 가라는 인사밖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삶은 그래서 어렵고 무거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