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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12. 2023

당신의 판단과 나의 판단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하는 판단은 옳은 것일까? 그 사람은 얼마나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를 판단하는 것일까? 내가 하는 판단은 얼마나 옳은 것일까?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얼마나 많이 알고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일까?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이 우리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최진영의 <유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생각과 판단들이 얼마나 근거 없고 황당하며 어쩌면 잘못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언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언니와 둘이 있을 때 내가 공미처럼 물었다면 언니는 다른 대답을 했을까? 너와 나는 다르지. 너와 나는 다를 거야. 언니는 미래를 보는 사람처럼 시선을 깔고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공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너 인도 갈 거라며. 거기서도 그렇게 물을 거야? 왜 이런 데서 살아요, 왜 이렇게 살아요, 묻고 다닐 거야? 아니죠, 언니. 왜 그렇게 말해요. 내가 바보도 아니고 거긴 외국이잖아요. 공미가 빠르게 대꾸했다. 글쎄, 그러니까, 거기까지 가서 네가 무슨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겠다는 건지 지금 내가 잘 모르겠어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것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 외에도 다른 것이 있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에도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열린 가능성이 우리의 성숙을 이끌어 간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알고 있는 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판단하는 사람은 그 좁은 세계에서만 살아갈 운명이다. 그는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이상, 그 경계 너머를 볼 수조차 없다. 


  “우리는 우리끼리 맥주를 마시면서 또 이유진 얘기를 했다. 이유진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끝없이 늘어놨다. 함부로 추측하고 과장했다. 나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것은 냄새처럼 열기처럼 우리를 휘감았다. 그것은 우리를 들뜨게 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부풀렸다. 그 분위기를 이유진도 느꼈을 것이다. 이유진은 베네치아의 모든 것을 보고 있으니까. 이유진은 내가 애써 감추려는 욕망도 집어내는 사람이니까. 나는 겁이 났다. 속내를 너무 쉽게 드러내는 그들이 위험해 보였다.”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열린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과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내게 내리는 판단에 대해서는 전혀 연연해할 필요조차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그렇게 되리라고 희망하는 것은 어쩌면 꿈일지 모른다. 그것은 진정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나일 뿐 그 사람의 판단에 의해 나의 삶이 결정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나에 관한 판단에 자유로워야 내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는 내가 아니고 나 또한 그가 아니다. 


  나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의 삶에 있어서 보다 더 나은 길을 가게 해주는 진정한 이정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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