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by 지나온 시간들

https://youtu.be/B2JwuJpSeis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만남은 헤어짐을 뜻한다. 헤어지지 않는 만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남이 기쁜 건 사실이지만 언젠가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헤어질 줄 모르기에 마냥 기뻐할 수는 있지만, 헤어짐에 대한 준비 없음에 더 아플 뿐이다.


사랑이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하지 않다. 어느 정도 그 시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하듯이 감정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변할 수밖에 없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믿음이 생길 수조차 없다. 믿음에는 이해도 필요 없다. 그냥 믿음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사랑은 힘들다.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생각해야 하고, 나의 존재보다 그 사람의 존재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생각이나 나의 주장은 절제해야 한다. 그저 옆에 있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이익을 생각하고,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나를 위해 그 사람이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고, 나의 기대대로 그 사람이 맞추어 주어야 하고, 나의 존재를 위해 그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스쳐 지나가는 따스한 바람일 뿐이다. 그 바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지나가 버리고 만다.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연이란 만남과 헤어짐 모두이겠지만, 사랑은 그저 받아들임이다. 나를 스스로 비워 나의 존재조차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로 그 비어 있는 곳에 그냥 받아들이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하더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간 떠나간다. 그 허전함이 오래가기는 하겠지만, 그마저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의 온전한 받아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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