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얻는다는 것

by 지나온 시간들

나의 고집과 편견이 강할수록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고집을 부리지 않으려 해도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편견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의 자아가 강할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내 생각이 옳다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이러한 고집과 편견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뿐더러 나 자신도 상처 받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내 생각과 마음도 변해야 한다. 고집이 셀수록 그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항상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생각과 마음으로 자기 세계만 고집한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폭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마음과 생각은 절대적이지 않아야 한다. 항상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아야 마땅하다.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사람이 이러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도덕경 49장은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 吾善之,

不善者, 吾亦善之,

德善.

信者, 吾信之,

不信者, 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성인은 고정된 마음이 없고

백성들의 마음으로써 그 마음을 삼는다.

좋은 사람은 나도 그를 좋게 해 주고,

좋지 않은 사람도 나는 그를 좋게 해 준다.

덕은 선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자를 신뢰하고,

신뢰할 수 없는 자도 또한 신뢰한다.

덕은 신뢰이기 때문이다.

성인의 천하에 대한 태도는,

늘 분별심 없이 수렴한다.

천하를 위하여 그 마음을 혼돈하게 한다.

백성들은 모두 그 이목을 성인에게 집중하지만,

성인은 이들을 모두 어린아이처럼 무지, 무욕하게 한다.


“聖人無常心(성인무상심)”이란 성인은 항상 변하지 않는 마음, 즉 절대적인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루하루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내가 아니어야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고집과 편견이 내가 가야 하는 그러한 길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즉, 나의 발전과 성숙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모습은 나만이 고칠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고쳐주지 못한다. 누구를 의지할 수도 없으니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은 길이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다른 길은 없다.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느냐가 나의 성숙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을 다 포용해 줄 수 있다면 그만큼 많이 발전할 수가 있을 것이다.


도덕경 49장에서 노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한테도 잘하고 나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사람에게도 잘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마음이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도 믿어주고, 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일단 믿어주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릇이 클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듯이 우리의 내면의 용량이 클수록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에게 있을 뿐이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면 그를 좋아하고, 나하고 잘 맞으면 그와 어울리고, 그렇지 않으면 그를 배격한다면 평생 그는 그러한 세계에서만 살 수밖에 없는 것이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에 만족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것은 자기 능력의 한계,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알지 못하고 끝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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