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수술이 끝나고

by 지나온 시간들

생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삶과 죽음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생에서 잠시만 머무르다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로 온 이 세상은 아니지만 머무르고 있는 동안은 힘들지 않게 있다 갈 수는 없는 것일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할지라도 우리의 운명은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역사의 선상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운명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아무런 죄도 없이 국가 없는 식민지 생활을 해야 했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였을 뿐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으로 그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 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폐허 속에서 끼니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밖에 없었고 독재 치하에서 그 많은 시간을 버티면서 오늘의 발전까지 이루어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를 존경한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나를 끝까지 믿어 준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었다. 믿음은 소망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소망이 있으셨기에 나를 끝까지 믿으셨다. 그 믿음은 이제 나의 마음에 굳게 새겨져 있어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전 7시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로 담담했다. 수술이 잘 되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내 옆에 다시 계실 거라 굳게 믿었기에 어떤 마음의 동요도 없었다. 집도는 분당 서울대병원 외과 과장님이 직접 하셨다. 대장암 분야에서 우리나라 명의로 선정되신 분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신 후 나는 평상시처럼 씻고 아침을 먹고 수술실 앞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나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이제는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수술하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안했다. 걱정이 되지도 않았고 마음을 졸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책만 읽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침대에 누우신 채로 어머니께서 나오셨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다시 내 곁으로 오셨다.


삶은 많은 것을 동반한다. 어려움이나 힘든 것이 없는 인생은 없다. 우리의 인생은 어려운 게 당연하다.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이 있었던가? 작년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전립선암 수술, 아버지의 뇌출혈, 그리고 올해의 어머니의 대장암 수술까지. 세 개의 커다란 태풍이 예고도 없이 연이어 불어 닥쳤다.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펴고 싶어도 바람이 세서 펼 수가 없었다. 그냥 그 거센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이제까지 나를 믿어 주셨던 그 마음을 모아 흔들리지 않고 내 자리를 지켰다.


하마터면 두 분을 한꺼번에 잃을 뻔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사셨다. 그냥 두 분이 내 옆에 계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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