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 올라갈때 새로운 반편성없이 그대로 같은반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2년을 똑같은 친구들과 공부하고 놀았다. 6학년 2반이었던 우리는 전체가 70명 정도였다. 새학년이 시작되어 선거를 했는데 공부도 젤 잘하고 인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배가 반장, 준기하고 헌영이가 부반장이 되었다.
1년을 같이 지냈던 친구들이 똑같이 6학년이 되었으니 학기초의 서먹함도 없이 학교가 파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별 짓을 다하며 놀았다.학교 뒤가 바로 우암산이었는데, 여름엔 온갖 곤충들이 산 전체를 뒤덮었다.
수 많은 곤충들을 잡아 가지고 놀았다.어떤 애들은 찌게벌레를 잡아 학교까지 가지고 와서 고추장을 먹여가며 찌게벌레끼리 싸움도 시켰다.산 너머엔 뚝방이 있었는데 우리는 거기서 홀딱벗고 수영배운 것도 없이 개헤엄을 쳐가면서 물놀이를 했다.
반장하고는 죽이 맞았는지 둘이서 같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학교 근처에 오락실이 있었는데 반장이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야, 오락 한판 하고 가자. 여기 엄청 재미난거 있어."
나는 오락을 해 본적도 없고 오락실에 가 본적도 없었지만 아무 생각없이 따라 들어갔다.
반장이 어떤 기계 앞에 앉더니 나한테 말했다.
"야, 이게 겔로그라는건데 진짜 재밌다.
내가 한 번 해볼테니까 봐."
그러고는 동전을 집어넣더니 게임을 시작했다.
갑자기 내눈이 휘둥그래졌다.
반장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현란한 손놀림과 함께
"뚜뚜뚜뚜뚜 따따따따따 파바바바바"
적 진지가 초토화되어 가고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그 화면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한 참 지나서 나를 보더니
"진짜 재밌지? 너도 한번 해봐. 안 어려워."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앉으라고 했다.
간단히 이거 저거 설명해주더니 동전을 넣어주며
"할 수 있겠지? 얼른 해 봐"
버튼을 누르자 게임이 시작됐다.
"어어어어어어"
10초도 지나지도 않아,
"뿅"
게임 오버.
내 전투기인지 비행기인지 모를 그거는 얼마 가지도 못해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너무 허탈해 반장을 쳐다보니 빙긋 웃으며,
"처음엔 다 그래, 그냥 우리 집에 가자."
오락실을 나서 반장 집에 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이, 그래"
반장 어머니께서 맞아주셨다.
반장집 마당엔 이런 저런 약초로 가득했다.
"이게 다 뭐야?"
"아, 아버지가 아프셔서 약으로 쓰는거야"
"어디서 난 건데?"
"아, 산에 가서 내가 형하고 캐 온거야."
그 당시 반장 아버지께서는 간인지, 어딘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많이 편찮으셔서 집에서 쉬고 계셨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공부하며 놀았다. 싸우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며 그렇게 일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남자애들은 머리를 바리깡으로 빡빡 밀고 검은 위아래 교복에 검은 모자, 국방색 가방을 들고 남자중학교로 갔고, 여자애들은 단발머리를하고, 검은 상의와 치마를 입고 여자중학교에 갔다. 중학교엔 학생수가 두 배가 더 많았다. 전체가 10반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 일부러 크게 맞춘 교복이 점점 작아졌고, 코밑하고 턱에는 수염이 돋았다. 목젖이 튀어나오면서 목소리가 변했다.
겨드랑이가 간지러웠고, 우리는 그렇게 남자가 되어갔고, 어른이 되었다.
대학, 군대, 유학. 나는 외국생활 11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자리를 잡고 세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았다. 그리고 큰 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40년이 더 지났다. 어느날 갑자기 어릴 때가 그리웠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했다. 우연히 훈희가 초등학교 6학년 2반 밴드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고 거기에 가입을 했다. 6학년 때 훈희하고 학교 수도가에서 씻고 있는데, 유도부 선생님이 훈희를 부르더니 말했다.
"야, 너 등치도 좋으니까 힘 잘 쓸거 같은데 유도부 들어와."
그 때 훈희가 대뜸 선생님께 대들듯이 답했다.
"저, 운동 안 할껀데요. 저 공부할껀데요"
훈희의 큰 목소리에 선생님이 기가 밀리셨던지
"안 할려면 말아라, 대신 공부 열심히 해."
그런 기억이 난다.리더십이 있으니 밴드를 하는가보네 생각하던 중, 어떻게 알았는지 훈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이현이가 대전에서 커피숍을 하니 다음에 거기를 가자고 했다.그러자고 답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던지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 날따라 눈도 엄청 많이 내렸다. 근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날 반장이 이현이네 커피숍에 왔다는 것이다.
이현이가 나중에 알려줬다.
"너 온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용배가 평일인데도 그 많은 눈을 뚫고 용인에서 대전까지 왔더라. 니가 오는 줄 알았던거 같아. 너 없으니깐 커피만 마시고 그 많은 눈을 다시 뚫고 갔어. 그날 눈 진짜 많이 와서 용배가 고생 많이 했을꺼야."
나는 아차 싶었다. 아, 그랬구나. 느낌이 안 좋았던게 이거였나보다. 난 너무 미안해서 훈희한테 부탁해 용배 전화 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40년이 더 지난 세월이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좀 먹먹했다.
용배가 말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낸거야? 우리 같이 밥 먹자."
그렇게 우리는 40여 년 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반장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우리은행 지점장이 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그 간 살아온 얘기, 어렸을 적 얘기를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어렸을 때 같이 시간을 채웠던 그 무언가는 변함없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자주 만나 어렸을때 처럼 마음을 터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시간은 변함없이 흐른다.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살 만큼 산 것 같다.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다.
미련도 없다. 이 지구상에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내 평생에 만났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 나머지 인생에서 새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새로 만나는 사람중에 마음을 주고 받을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길 가에 버려진 돌맹이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잘 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가슴이 시리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자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내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 많았으면 좋겠다. 나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나마 진정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그 시간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