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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13. 2021

영원회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동일한 것의 반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직장이나 학교에서 가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점심이 되면 다시 식사를 한 후 같은 일을 하고 일을 마친 후에 집에 와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잠을 자고 나서 다음 날 일어나 전날 했던 것을 똑같이 되풀이한다. 매일 거의 비슷한 것을 반복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두 달 그리고 일 년 아니 오랜 세월 비슷한 것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다가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게 된다. 엄청난 것이 있는 것 같아도 크게 보면 별 차이가 없다. 먹고살기에 바쁘고 살아가기에 바쁠 뿐이다. 나의 존재의 의미는 이러한 반복적 일상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꽃 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새로이 이어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세워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모든 것은 다시 인사를 나눈다.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회전한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니체)


  길지 않은 인생을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삶은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니체는 말년에 이러한 반복적 삶을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라 표현하고 있다. 영원히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로 우리의 삶이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영원회귀의 사상을 단순히 인정을 하고 만다면 우리의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성경의 말대로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 1 : 9~10”)


  영원회귀의 무상함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긍정이다. 허무주의를 긍정함이란 자연의 순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 순리에 따라 살아가더라도 우리가 도달하는 지점은 시작점과는 다르다. 거기에 우리의 삶의 긍정적 면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과거의 나를 과감하게 파괴하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 순간순간의 의미가 있도록 나름대로 의지를 가지고 존재해야만 그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나의 실패나 나의 단순한 일상도 나의 더 나은 모습의 기반이 되게 만드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누구나 실패를 하고 잘못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몰락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자리를 기반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은 필연이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필연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충실할 때 그 필연에 의미가 부여된다. 반복을 고통이라 느끼고 권태라 생각한다면 그는 삶에 회의를 느낄 뿐이다. 이러한 반복과 권태를 파괴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위대한 파괴자가 되어야 한다.


  영원회귀란 단순한 반복이 아닌 내가 영원히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해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달라지는 모습에 현재 우리의 존재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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