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면 선이며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악인 것인가.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기준의 확실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선과 악의 기준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떠한 것인 도덕적인 것인지는 이미 정립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적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다만 현상들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이 존재한다(선악을 넘어서, 니체).”
도덕이란 어찌 보면 그 공동체가 그 시대에서 공동체 자체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일시적 가치체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 공동체의 생존과 그 조직의 강화 및 연속성을 위한 인위적인 기준에 해당할 뿐이다. 시대가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그러한 기준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한 시대에 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대개는 그 전 시대에는 선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때를 잘못 만나 그런 반응을 얻게 된 것이다(선악을 넘어서, 니체).”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나 악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에게 강요한 것에 의해 정립되어 왔다. 그러한 선과 악은 절대적이 아니다. 도덕이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기준에 의해 확립되는 것도 아니다. 소위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도 인간의 본질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그 시대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우선 도덕이란 일반적으로 공동체를 존속시키며 공동체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이다. 다음으로 도덕이란 공동체를 어떤 수준 그리고 어떤 질로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도덕의 동기는 ‘공포’와 ‘희망’이다. 불합리하고 편협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면 강할수록 보다 더 조잡하고 강력하고 거칠게 되는 공포와 희망 말이다. 공동체를 존속시키고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보다 원만한 수단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때는 가장 무서운 공포를 수단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한 지옥과 더불어 피안을 고안해 낸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단에 속한다. 그것에 의해서 영혼에 고문과 교수형이 행해지기 때문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선과 악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옳고 타인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 그 자체는 신뢰할 수 없다. 그는 선과 악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아가 할 곳은 선악을 넘어선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