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측량하기 없을 정도로 넓고 크다. 우주는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을까.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드넓은 우주의 시공간에서 무한한 물체들로 이루어진 자연은 어떤 목적이 있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내던져 있는 것일까.
무한한 우주의 존재는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함 그 자체만이 분명할 뿐 다른 이유를 우리가 인식하기에는 역부족일 뿐이다.
자연의 위대함이 거기에 있다. 알 수 없음이 바로 그것이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경탄하는 것 외엔 다른 것이 없다.
“반복해서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항상 새롭고, 그리하여 내 마음을 경탄과 외경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머리 위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 도덕률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내가 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위치에서 시작하여 나와 외계를 결합시키고, 세계 안의 세계와 체계 안의 체계를 가진 무한한 공간 속으로 확대시키며, 또 주기 운동 및 그 운동의 시작과 지속의 무한한 시간 속으로 확대시킨다. 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자아, 즉 나의 인격에서 시작하여 진정으로 무한함을 지니고 있지만, 오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세계 속에 나를 서게 한다. 이 세계와 나와의 관계는 전자의 경우처럼 단순히 우연한 결합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결합이라는 것을 나는 인식한다. (순수 이성 비판, 칸트)”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면의 가능성의 영역의 무한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끝을 누구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우연보다는 필연이 확실하다. 나로 인해 나의 세계가 변화될 수 있기에 그렇다. 가능성의 무한함이 엄청나지 않을지는 모르나 한계가 없음은 분명하다.
나의 세계는 나로 인해 구축될 수 있고, 나의 인식의 지평선도 나로 인해 넓어질 수 있기에 그 무한함을 신뢰할 수 있다. 비록 보잘 것 없을지는 모르나 나의 우주는 드넓은 세계로의 문이 열려 있음이 확실하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을 바라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별이 빛나듯이 나의 내면의 세계도 언젠가는 별처럼 빛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또한 그러한 무한함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에 오늘이라는 희망의 사다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