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슬픔과 고통, 이별과 아픔 등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도 너무나 많이 수시로 일어난다. 자신의 힘으로 이러한 것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무수히 많다. 운명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것에는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운명에 반항하고 저항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그가 바랐던 것은 전체였다. 그는 자신을 전체로 단련시켰고 자신을 창조했다. 그렇게 자유롭게 된 정신은 기쁨에 차 있고 신뢰하는 숙명론을 수용하면서 세계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것은 오직 개별적인 것만이 비난받을 수 있고 전체 안에서는 모든 것이 구원되고 긍정된다고 믿는다. 그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은 가능한 모든 신앙 중에서 최고의 것이다. 나는 그러한 신앙에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우상의 황혼, 니체)”
여기서 말하는 전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환희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순간들의 집합이다. 그 순간들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픔과 슬픔의 순간도 인간이기에 주어지는 것이다. 고통과 절망 또한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모든 순간을 다 받아들이고 긍정을 하는 것이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보다 더 깊은 삶의 심연으로 갈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신이 준 선물일지 모른다. 운명이라는 것은 받아들이라고 주어진 것일 뿐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다른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이러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인간의 가장 위대한 스스로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열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세계는 운명을 받아들이기 전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철저한 능동적 주체의 행위여야 한다. 삶의 아름다움은 아마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