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환영하자

by 지나온 시간들

나는 적이 두렵지 않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적을 오히려 환영할 뿐이다. 내가 그 적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겁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다. 죽음 따위에 연연할 것이라면 살 가치도 없다. 어차피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이다. 잃을 것도 없고 미련 둘 것도 없다. 그러기에 그 어떠한 적도 나에겐 나의 성장의 발판에 불과하다.


싸움도 싸워봐야 느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과 많이 싸워봐야 나의 실력도 느는 법이다. 그러기에 나는 적을 환영하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기회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 자신의 재난, 자신의 비행 자체도 오랫동안 심각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조형하고 형성하며 치유하고 망각하는 힘을 넘칠 정도로 가진 강하고 충실한 인간들의 표지이다. (현대에서 그 좋은 예는 미라보이다. 그는 자기에 가해진 모욕과 비열한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했다. 그가 남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도 단지 그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은 다른 인간들의 경우에는 파고들었을 많은 벌레들을 단 한 번에 흔들어 털어버린다. 도대체 이 지상에서 ‘적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을 수 있다면 다만 이와 같은 고귀한 인간에게만 있을 수 있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의 적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외경심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도덕의 계보학, 니체)”


죽음을 초월했는데 어떠한 적이 두렵겠는가. 오히려 나에게 적이란 나 자신의 힘을 테스트할 기회일 뿐이다. 그로 인해 나의 능력이 더 발전될 수밖에 없다. 패배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떠한 패배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삶을 엄청나게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의 모습이 어떠하건 그것 또한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그러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나보다 더 강한 적이 온다면 현재의 나의 모습은 더 빠른 시간 안에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적을 환영하고 기뻐할 뿐이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적과의 만남 후의 나의 모습에 있다. 어떠한 적이건 어떻게 나에게 다가오건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예상치 못한 적의 모습이 오히려 반가울 뿐이다. 그로 인해 내가 더 많이 나아질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에 그렇다.


사실 나는 나의 적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 오면 오는 대로 나의 의지로 넘어서기만 하면 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 적이건 적을 넘어선 그 이후의 나의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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