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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31. 2021

발자국은 삶의 흔적

더운 여름 바닷물이 출렁이는 해변을 찾았다. 밀려오는 바닷물 소리에 마음은 적막한데, 해변을 따라서 찍혀 있는 발자국들이 있었다. 이리저리 찍혀 있는 발자국의 모습에서 삶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그 흔적의 끝은 어디일지 그것도 궁금했다.


발자국은 존재의 흔적이다. 어느 발자국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아 이리저리 마구 뛰어다녔던 마음이 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자로 잰 듯한 발자국은 차분한 마음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 나란히 걸어갔던 두 명의 발자국도 있고, 커다란 성인과 조그마한 아이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기도 했다. 존재는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


내가 남기고 있는 나의 존재의 흔적은 어떤 모습일까? 발자국을 보면 존재를 알 수 있듯이 나의 흔적을 보면 나의 존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그렇게 나의 존재의 흔적을 이 지구 상에 남겨 놓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름다운 흔적만을 남기고 싶지마는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아픔이 있다. 왜 나는 나의 마음대로 나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것일까? 삶은 나의 뜻대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기에 힘에 지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으며, 기분 좋은 마음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만 홀로 외로울 때도 있어 그런 흔적을 낼 수도 없다. 누군가와 같이 가다 따로 가기도 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경우엔 그를 엎고 가야 할 때도 있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나의 발자국의 흔적은 아무래도 아름답기는 틀린 듯하다.


나도 이 지구 상에 존재했기에 내가 남기고 싶은 흔적이 있지만, 나의 능력도 하늘의 운명도 나의 마음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이 허락한다면 나의 조그마한 소망이라도 이루어져서 내가 원하는 존재의 흔적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바닷물이 밀려와 발자국을 쓸어 가듯이 나의 흔적도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바라기는 나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일부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오래도록 남아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나의 흔적을 누군가가 보아준다면 나는 마음이 벅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해변의 찍혀 있는 발자국들의 끝은 어디일까? 누군가의 발자국은 해변을 따라가다 갑자기 사라졌고, 누군가의 발자국은 나의 시야를 넘어서까지 계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일지라도 그 발자국의 끝은 있을 것이다. 영원한 발자국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흔적도 어디까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사라질지, 시야가 닿지 않는 데까지 이어질지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발자국들을 보니 마음이 아렸다.


내가 남길 수 있는 발자국은 이제 얼마나 될까?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 남긴 나의 발자국보다 훨씬 적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나온 발자국을 보니 마음만 아플 뿐인데, 앞으로의 흔적은 어떻게 될지 마음마저 불안하다. 앞으로 남을 나의 흔적은 편안한 발자국, 그리고 차분한 발자국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다. 그 흔적에는 기쁨이 조금 더 많았으면 한다. 힘들지 않고 웃음에 겨운 그러한 흔적들로 남겨지기를 바라지만 아마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발자국이 끝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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