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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4. 2022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등학교 때 학교 가기가 두려웠다. 나는 키가 그리 크지 못하고 힘도 너무 약했다. 5학년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 반 남학생을 편을 갈라 씨름 시합을 시키셨다. 여학생들은 주위에 빙 둘러서 응원을 했다. 임의로 줄을 섰기에 아무하고나 시합을 붙어야 했다. 운이 없게도 나의 상대방은 우리 반에서 덩치가 가장 큰 아이 중의 한 명이었다. 샅바를 잡고 경기를 하려고 일어섰는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고목나무에 매미가 달려 있는 거 같다.” 내가 매미였던 것이다. 결과야 뻔했다. 어떻게 매미가 고목나무를 넘어뜨리겠는가?


  학교가 가기가 두려웠던 것은 힘이 센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맞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집에 와서도 부모님께 비밀로 했다. 나를 괴롭혔던 아이가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나는 그냥 무섭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어떻게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일까? 그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면 피한다고 쫓아와서 뭐라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힘은 아마 두세 배 셌을 것이다. 내가 왜 괴롭힘을 받아야 하는지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무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닐 때 그 아이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 조직폭력에 가담했다가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상대 조폭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냥 무덤덤했다. 


  3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며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오히려 맞는 것보다 더 심했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며 나를 밟아댔다. 나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힘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나중에 정신병이 생겼다고 들었다. 왜 그 아이가 정신병이 생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도 나는 담담했다. 

  나는 비록 외로웠지만 따뜻하게 대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6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 그랬다. 그나마 유일하게 나의 마음을 조금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놀았다. 여기저기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며 둘이 여러 가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중학교 들어가면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반장을 만나러 간다. 따뜻한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따뜻하기 때문이다. 편하고 나의 아픈 모습도 보여줄 수 있고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순수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처럼 나의 주위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순수한 인간관계로 만족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 살아가는 것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시간은 없다. 피하고 싶은 사람은 피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피한다. 정치적이나 종교적인 자기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사람은 일부러 만나지 않는다. 


  이제는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받아주고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만날 뿐이다. 나에겐 그런 친구들 만날 시간도 부족하다. 나 또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순수하게 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을 통해서 이익을 얻거나 무언가를 취하려고 만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몇 시간 보내기 위해 만날 뿐이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나이만 들었을 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나마 나에게 몇 명이라 할지라도 순수한 친구가 있는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시간을 그러한 친구들과 함께하려고 한다. 몇 명의 따뜻한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불행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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