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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8. 2022

달팽이와 칼날

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무당집이 있었다. 굿을 하는 날에는 꽹과리와 북소리로 인해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시끄러웠다. 굿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달려갔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그때 친구가 하는 말이 무당은 신들리면 작두 위에 올라가도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친구한테 반박을 했다. “사람이 어떻게 칼날 위를 올라간다는 말이냐?” 하면서 거짓말도 정도껏 하라고 했다. 하지만 속으로 정말 그것이 가능한지 궁금해서 무당이 하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날 무당은 작두 위에서 하는 그러한 굿은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우리 동네에서는 굿을 수시로 했지만 나는 무당집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어머니께서 무당집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굿하는 소리가 나면 항상 머릿속에서 혹시 오늘은 무당이 칼날 위에서 춤을 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어머니 말씀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결국 내 평생에 무당이 칼 위에서 춤추는 것은 아직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과학을 전공하면서 생물의 여러 가지 신비한 일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달팽이는 칼날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기어간다는 사실이다. 달팽이를 만져보면 그 피부가 굉장히 부드럽고 연약하다. 달팽이가 정말 칼날 위를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은 채 기어갈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솔직히 나의 용기로는 달팽이를 가지고 칼날 위를 기어가는 실험을 하지는 못했다. 그냥 그런 실험을 한 경우를 찾아보면 될 것 같아 뒤져보니 정말로 달팽이를 칼날 위에 올려놓고 기어가는 것을 한 것이 있었다. 놀랍게도 부드럽고 연약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달팽이지만 그 날카로운 날이 서 있는 칼 위를 달팽이는 아무런 상처나 해를 당하지 않고 여유 있게 기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을 쳐보면 그 실험 영상을 바로 볼 수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너무 궁금해 알아보니 달팽이의 배 밑으로는 점액이 계속 분비되고 있는데 이 점액이 달팽이의 피부와 칼날 사이에 확실한 막을 형성하기 때문에 달팽이는 전혀 다치지 않는 것이었다. 특이한 것은 달팽이는 칼날같이 아주 날카로운 것을 지나갈 때에는 피부 세포마다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고 특히 아주 날카로운 위험한 구간을 지나갈 때는 점액질이 훨씬 더 많이 나와 칼날과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현상을 또 생각해 보면 달팽이의 이동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 따라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달팽이가 어떠한 방해물이 나타나게 되면 이를 우회하려면 너무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떠한 장애물이 앞에 나오더라도 우회할 필요 없이 바로 자신의 점액질의 분비량을 조절하여 바로 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지만 이를 피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다스려 어떠한 것도 다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면으로 도전한다면 웬만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팽이가 점액질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듯이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우회하거나 피할 필요 없이 커다란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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