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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16. 2022

박사는 왜 소수를 사랑했을까?

수학은 자연의 언어다. 자연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수학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수학을 통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1991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오가와 요코의 장편소설이다.


“나와 우리 아들은 그를 박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박사는 우리 아들을 루트라고 불렀다. 아들의 정수리가 루트 기호처럼 평평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만 자릿수나 되는 거대한 소수와 수학의 증명에 사용되는 가장 큰 수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수, 무한을 넘어서는 수학적 관념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그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동원해 봐야 박사와 함께 지냈던 시간의 밀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주인공은 전도 유망했던 박사후 연구원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기억을 상실했다. 박사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80분 정도만 지나면 그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 또한 기억하지 못했다. 그 후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고 집안에서 홀로 수학만 연구하고 있었다.


박사의 식사와 집안일을 도와주러 온 한 젊은 여인, 그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사랑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버리고 떠났다. 그녀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가정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중 박사의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게 된다.


그녀가 박사의 집에 오기 전 이미 아홉 명의 가정부가 일하던 중간에 스스로 그만두었다. 박사는 80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이 새로운 날들이었고,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하기에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기에 많은 가정부들이 스스로 박사 집을 떠나갔다.


열 살인 루트, 학교가 끝나면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외롭게 지내다가 박사의 배려로 학교가 끝나면 박사의 집에 와서 엄마, 그리고 박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후 일단 내 손을 빌려 몸을 일으킨 박사가 보여준 활약상은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다리를 다친 것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하는데도 박사는 루트를 업고 소아과까지 뛰었다. 흔들려서 오히려 상처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될 지경이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30킬로그램이나 되는 초등학생을 업고 뛴다는 것이 몸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박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뜻밖이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쓰다듬어주었던 등에 루트를 업고, 두 다리를 팔에 꽉 낀 채 곰팡이 핀 구두를 신고 달렸다. 루트는 아파서가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것이 부끄러워 타이거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수학만 다루느라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하던 박사였지만,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진실된 내면의 모습을 보게 된 여인과 루트는 박사에 대해 그렇게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박사와 루트가 공통적으로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여인은 다 함께 야구 경기를 보러 간다. 박사와 루트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세 명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박사는 아프기 시작하고, 이를 간호하느라 루트와 여인은 며칠을 박사 곁에 머물러 돌보게 된다. 이는 가정부의 일하는 규칙을 어긴 것이었다. 고객의 집에서 밤을 지내면 규칙 위반인 줄 알았지만, 여인은 박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사의 형수는 여인을 오해하게 되는데, 박사가 형수, 여인, 루트가 다 같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 메모지를 꺼내 수식 하나를 쓰게 된다.


“거기에는 딱 한 줄 이런 수식이 쓰여 있었다.

아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미망인은 더 이상 손톱으로 식탁을 긁지 않았고, 그 눈동자에서도 동요와 냉담함과 의심이 사라져 갔다. 수식의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위 식은 오일러의 공식이다.  e는 자연로그의 밑으로 네이피어 수라고도 하며 2.73182......이라는 무리수이다.  파이는 원주율로 3.1415.......이며 이 또한 무리수이다. i는 허수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수이다. 이 세 수는 각각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네이피어 수, 원주율, 허수가 만나 조합을 이룬 후 여기에 1을 더하면 0이 된다. 즉 끝없이 계속되는 두 개의 무리수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고 허수가 서로 만난 상태에서 1을 더하는 순간 절대적인 질서가 잡히는 0으로 규합된다.


0은 수학에서 없음을 뜻한다. 없음의 세계는 가장 우주적으로 비어 있는 질서가 잡힌 안정된 세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바로 그 공(空)이 없음의 세계이다. 박사와 루트 그리고 그 여인, 이 세 명은 가장 아름다운 조합이라는 뜻이었다. 더구나 박사는 루트가 자기 자식은 아니지만, 친자식 이상으로 이미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형수는 박사의 뜻을 그 수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은 각자가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그러한 특징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각자 존재하고 있다. 조화로움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특징을 순화시켜 안정된 세계를 만들어 낸다.


“박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것은 소수였다. 나도 소수란 수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랑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사에게 소수는 말 그대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소수를 아끼고 어루만지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존경했다. 때로는 애무도 하고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한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루트를 소수만큼이나 아꼈다.”


소수란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를 말한다. 이는 어떤 존재의 고유함을 뜻한다. 고유하기에 또한 고고하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모습이 어떨지라도 나라는 존재는 이 지구 상에 오직 나밖에 없다. 나는 고유하며 고고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는 사람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그를 판단한다면 그 사람의 존재의 고유함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우리의 시각과 생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인식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인과 루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억을 하지 못하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박사였지만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박사를 판단하지 않고 온전히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비록 가족은 아니었지만 행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박사의 기억력이 완전히 손상되었고 박사는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여인과 루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요양원에 있는 박사를 찾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루트는 대학에 들어가 수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영원히 작별해야 할 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는 박사에게는 그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가정부와 루트가 있었다. 오일러의 공식처럼 그는 따뜻한 사랑을 받고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손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

                         (윌리엄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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