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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r 19. 2022

사라지지 않는 희미한 불빛같이

살아가면서 만났던 누군가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와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많은 얽힘과 부침이 있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라도 나에게 오래도록 가슴 한켠에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 그 사람이 나의 마음속에 차지했던 순간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는 나에게 다가왔던 그 누군가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나는 시간강사인 그녀가 간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즉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려는 계획이었다. 스승이자 선배였던 그녀는 주인공에게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 이야기해 주었고, 서로 한 학기 동안 여러 번 만나는 과정에서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조그마한 상처가 되는 말이 오고 가기도 했다. 그러한 상처는 비록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멀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가는 길이 비슷해 오래도록 좋은 관계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삶은 원하는 대로 그렇게 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강의를 다녀와 피로를 억누르며 책을 펼칠 때, 강사 평가서를 읽으며 내가 누군가에게는 한시도 견딜 수 없는 형편없는 강사임을 확인할 때, 무례한 학생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후회할 때, 이미 짜인 커리큘럼 안에서 나조차도 지루함을 느끼며 형식적인 강의를 할 때, 성과를 위해 억지로 논문을 쓸 때, 학회 간사로 일하며 교수들에게 전화와 메일을 보내느라 하루가 다 갈 때, 무너지지 않으려고, 아니,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울어서는 안 된다고 참으며 집으로 걸어갈 때도, 나는 어딘가에 있을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그녀가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10년이 지나 주인공인 나는 시간강사가 되었다. 그 길을 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며 문득문득 자신의 스승이었던 그녀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누군가가 내 옆에 오래도록 함께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커다란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존재가 내 곁에 실재하지 않고, 멀리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같이 존재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지와 힘이 되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지고,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나의 주위에는 그러한 희미한 불빛 같은 존재라도 있는 것일까? 내가 힘이 들거나, 외롭고 아플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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