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계속된다면

by 지나온 시간들

불행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불행이 한 번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계속될 수도 있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행운이 있을 수도 있다. 행운은 선물이라 생각하면 되지만, 문제는 불행이 우리의 삶을 크게 파괴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안보윤의 <나선의 방향>은 불행이 계속해서 찾아온 어느 남자의 슬픈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었다. 남자의 부모는 아주 오래전 사라졌다. 남자의 목소리 역시 그들과 함께 사라졌으며, 목에 사선으로 새겨졌던 굵은 칼자국은 새로 돋은 살과 주름 사이로 흐려져 한때 그가 소유했던 말의 억양과 리듬의 기억을 품은 채 사라졌다. 열 살 아래 남동생이 사라진 건 3년 전이었다. 하얗고 넓은 이마와 상반되게 억센 머리칼을 가졌던 딸은 다섯 시간 전에 사라졌다. 이제 마지막, 마리암과 그들의 집이 사라진 지점에 이르러서야 남자는 자신의 불행을 오롯이 마주했다. 어떻게 이렇게 불행한 삶을 끈질기게 이어온 걸까. 주저앉은 남자의 손바닥에 모래알이 닿았다. 가슬가슬한 모래알이 뜻밖에 따뜻해서, 남자는 뺨을 바닥에 대고 흐느꼈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남자는 그가 어렸을 때, 가족이 함께 타고 가던 자동차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부모를 한순간에 잃었다. 그 사고로 그 또한 성대를 잃어 평생 벙어리로 살아가야만 했다. 유일하게 다치지 않은 동생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동생마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이집트 출신의 마라암과 결혼을 해 산골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유일한 딸마저 열병으로 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 숨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내마저 어디론가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괜찮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행복하지 않았다. 남자는 이제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반성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걷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이 남자의 궤적을 더듬었다. 남자는 둥글게 둥글게, 마리암과 그의 작은 딸이 함께 등을 맞대고 잠들던 자리를 향해 점점 더 작은 원을 그리며 걸었다. 모래알이 자기장에 휘둘리듯 남자의 걸음을 따랐다. 모래알의 뾰족하거나 둥근 모서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나선의 중심에 다다른 남자가 무심코 자신의 목을 긁었다. 그의 몸에 물이끼처럼 돋아난 모래가 남자의 손에 긁혀 툭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들판에 남은 것은 모래, 오로지 모래뿐이었다.”


그러한 불행을 그가 원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자신의 삶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든 불행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전혀 예상치 않게 결코 원하거나 바라지 않았던 그러한 불행이 우리의 삶에 불현듯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불행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릴 수 있는 그러한 불행이 우리 자신에게 불어닥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만약 한 번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고 소설의 주인공처럼 계속되는 불행이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불행이라는 운명의 끝에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오직 소멸만이 있는 것일까? 불행을 우리의 손으로 끝낼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불행으로 인한 운명을 우리는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러한 불행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한 불행을 미리 예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커다란 불행을 경험해 본 사람은 순탄한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순탄한 삶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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