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새벽에 눈이 떠졌어. 어젯밤에 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이 들어서 그랬나 봐. 어젯밤에 읽으려던 임철우의 <흔적>을 오늘 새벽에 읽었어.
이 소설은 삶의 마지막을 앞둔 어떤 한 노인의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야. 그에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오래전에 죽었고, 아내마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
그에게는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자기 죽음의 흔적을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고 깨끗하게 삶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싶어 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그렇듯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게 돼.
“애당초 어디서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일까. 어리석은 아들이 친구의 꾐에 빠지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랬더라면 송두리째 파산을 당하지도 않았을 터이고, 아들의 이혼도 없었을 터이고, 며느리가 아이를 지우는 일도, 아아, 끔찍한 죽음도 없었을 터이지. 아니야, 애초에 녀석을 그렇듯 턱없이 유약하고 선량하기만 한 놈으로 키우지 않았다면, 공대가 아니라 제 소원대로 미술대학에 보냈더라면. 아니야. 그날 밤 내 눈앞에서 술 취해 울고불고 못난 꼴을 보였을 때, 그때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못난 놈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뺨을 때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매운 연기도 그쳤는데, 당신은 눈물이 훅 솟구친다. 건너편 숲이며 골짜기가 물기에 어룽져 희미해 보인다.”
살아가면서 후회가 되는 일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모든 사람은 다 각자 나름대로 아쉬운 일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지나온 시간은 돌릴 수 없기에, 그러한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할 거야. 나름대로 고민해서 선택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별 차이가 없을 거야.
“마지막 순간이 임박했음을 당신은 또렷이 예감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 아니면 방 안에서. 어차피 당신이 죽음과 조우하는 형식은 그 둘 중 하나일 터였다. 그러나 무심히 걷다가 불시에 길바닥에 쓰러져 개처럼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끔찍한 악취와 함께 부패한 시신으로 뒤늦게 발견되는 것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 몫의 육신,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육신을 추악하고 끔찍한 오물 덩어리로 만들어 비정한 타인들의 조롱과 구역질과 가래침을 뒤집어쓰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신에겐 그 외의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신은 철저히 혼자였다. 이제 당신을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어야 이 초라한 흔적을 지상에 남기지 않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 당신을 두렵게 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죽음이 비참한 흔적으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배를 타고 먼바다에 나가 몸을 던져 깊은 바닷속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흔적 없이 끝내려고 해.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이러한 상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고, 거부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지저분한 흔적 없이 깨끗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친구야,
우리들의 흔적은 나중에 어떤 모습일까? 바라건대 내가 남겨놓는 흔적은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저분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비록 이 소설이 조금은 어둡고 우울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언젠가는 다가올 현실이 될 것이기에 지금부터라도 더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다음에 또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