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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15. 2022

지하 생활자의 수기

세계적인 문호 도스도예프스키였지만, 그는 젊었을 때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다. 그는 너무도 가난했고, 스물 여덟 살 되던 해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불온한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 집행 바로 전 극적으로 사형이 취소되었지만, 8년 동안 유형 생활을 해야 했다. 4년은 옴스크 감옥에서 나머지 4년은 시베리아의 군부대에서 극한의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질적인 간질병이 있었고, 주기적으로 간질로 인한 발작에 시달렸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아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는 태양이 빛나는 밝은 일상생활을 탈피하여 지하로 숨어들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글을 쓰며 살다가 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직 그에게 있어서 지하 깊은 곳에서 글쓰기밖에 그가 진정으로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 나는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나의 삶은 그때도 음울하고 무질서하고 야생에 가까울 만큼 고독했다. 나는 그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심지어 말하는 것조차 피하면서 점점 더 나만의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근무처인 관청에서도 아무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나의 동료들이 나를 괴짜 취급한다는 걸 아주 잘 인지했을 뿐만 아니라-줄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어쩐지 역겨움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내 머릿속엔 또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니까, 자기의 역겨움이 담긴 시선을 받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왜 들지 않는 것일까?”


  그는 왜 지하로 숨어들었던 것일까? 지하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분명 차이가 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진정으로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꿈과 현실에 대해, 이성과 욕망에 대해, 합리적인 것과 부조리한 것에 대해, 상식과 미친 광기에 대해 지하와 지상의 경계를 넘나든 사람만이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에 살고 있는 그는 일반적인 상식을 거부한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러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삶은 단순히 하나의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은 너무나 다양하고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를 고집하곤 한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이성적 광기로 변해갈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세계가 옳다고 생각하고 고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광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이미 영혼 깊숙이 폭군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영혼을 무한히 지배하고 싶어 했고, 그에게 주위 환경과 결별하라고 요구했다. 나의 이 열정적인 우정에 그는 경악했고, 급기야는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경련을 일으키는 지경이 됐다. 원래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치는 순진한 영혼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한테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쳤을 땐 이내 그가 증오스러워져서 나 자신으로부터 밀쳐 냈다. 그를 필요로 했던 것은 오직 그를 정복하고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서였던 양 말이다. 하지만 내가 모든 사람을 다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비록 현재 지하에 살고 있을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그곳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지하에서의 삶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고, 삶이 그를 그 지하로 몰고 갔는지는 모르나, 그 지하에서의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계속된 지하에서의 삶은 그를 완전히 이성적 광기를 가진 인간으로 영원히 머무르게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지하로 갔지만, 더 커다란 아픔이 그에게 다가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이제는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 지하 생활자의 운명이 아닐까? 그가 쓰던 수기를 이제는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그 수기는 추억의 기록으로 남겨야만 진정한 지하 생활자로서의 삶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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