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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17. 2022

마음의 부력

인간에게 있어서 완벽한 상호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은 만큼 그것을 완전한 가역 과정처럼 똑같이 돌려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것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불균형을 감내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균형을 스스로 균형이 되도록 노력하려는 것이 진실한 인간관계의 시발점 인지도 모른다.


  예를 든다면 부모가 어린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듯이, 자녀는 늙어가는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라 할 것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주었다면, 그 사랑에 대해 조금이라도 돌려주려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직 받기만 하는 사랑이거나, 혹은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언젠가는 끝을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랑이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문제의 근원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보다 나은 인간관계의 지속이 가능할 수 있다.


  이승우의 <마음의 부력>은 사랑하는 가족관계에서도 서로의 빚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것을 인식해야만 가족 간의 아픔이 최소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혜택을 더 받은, 더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덜 받은, 덜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을 향해 갖게 되는 마음의 부담감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형의 입을 통해 ‘면목 없다’는 말을 들을 때 내가 느끼곤 했던,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은 부끄러움과 난처함을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형일 것이다. 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없었고, 말하지 못했고, 이제는 영원히 말할 수 없게 돼버렸다. 형은 이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그런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형의 그 말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을, 아마 형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면목 없다는 형의 말이 나를 면목 없게 한다는 사실을, 아마 형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받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것이 가족 간에는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가족관계도 인간관계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서로의 마음의 불균형으로 인한 기울어짐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불균형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가족이니까 주는 것이 당연하고,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지극한 착각일 뿐이다.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그 커다란 부담이 삶의 아픔으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친척들이 간혹,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편모슬하에서, 탈선하지 않고, 끈기와 성실로, 어쩌고 하며 나를 추켜세울 때, 특히 형이 곁에 있을 때는 더욱, 그들의 입을 틀어막거나 어딘가 구멍을 파고 내 몸을 숨기고 싶었다. 내 어쭙잖은 이른바 출세가 실은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의 결여, 즉 태만의 결과며, 따라서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닌데도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형만이 아니라 삶을 망신 주는 것이고, 내 마음까지 할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여야 한다. 사랑이란 어느 정도까지 포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익을 위해, 자존감을 위해, 자신을 위해, 가족관계의 불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면 가족이란 단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내가 느껴온 것처럼 어머니가 수시로 느껴왔을,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느끼게 될 깊은 회한과 죄책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상실감과 슬픔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자각적 반응이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무자각적 반응이어서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가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아들에게 해주어야 했을 것을, 현실의 어려움으로 해주지 못한 채, 그의 죽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죄책감은 평생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다. 형으로서 동생에게 빚을 지기 싫어 자신을 내보여 주지 못해 형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동생은 형이 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한 빚을 이제는 갚을래야 갚을 수가 없는 현실은 평생 가슴 깊이 사랑했던 그 존재와 함께 영원히 마음 한쪽에 남아있게 될지도 모른다. 


  쉽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넘어서 관계의 불균형을 없애려 노력하려는 사랑만이 가족이라는 지극한 소중한 관계의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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