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cm 정도의 꽃대 끝에 조그맣고 하얗게 피는 눈풀꽃, 이 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기에 가장 빨리 피는 꽃 중의 하나이다. 눈이 오는 중에도 필 수가 있어 설강화(雪降花)라고도 한다.
눈풀꽃이 눈이 내리는 속에서도 빨리 피어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리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것일까? 얼마나 겨울이 지나가기를 바라면, 눈이 오는 속에도 피어나려 하는 것일까? 아직은 춥고 바람도 찬데 혹시 피어났다가 바로 추위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기다려 따뜻한 햇볕이 화사한 날에 피어도 될 것을 왜 그리 서둘러 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어서 겨울이 가기를 너무나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게는 춥고 긴 겨울이 어서 끝나기를 원하기에, 하루라도 빨리 피고 싶은 그 내면의 마음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아직은 춥고 눈도 있어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추운 대지를 뚫고 피어나는 눈풀꽃, 눈처럼 하얀 그 꽃이 유난히도 예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Snowdrops>
Louise Gluck
Do you know what I was, how I lived? You know
what despair is; then
winter should have meaning for you.
I did not expect to survive,
earth suppressing me. I didn't expect
to waken again, to feel
in damp earth my body
able to respond again, remembering
after so long how to open again
in the cold light
of earliest spring
afraid, yes, but among you again
crying yes risk joy
in the raw wind of the new world.
<눈풀꽃>
루이즈 글릭
(번역, 류시화)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춥고 기나긴 겨울은 언제야 끝나는 것일까? 살아 있으나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고, 숨을 쉬고 있으나 숨 쉬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그 힘든 기간은 언제나 끝나게 될까? 왜 나에게는 이런 혹독하게 추운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일까? 따스한 봄이 얼른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건만, 왜 그리 봄은 더디 오는 것인가? 오늘 햇빛을 보니, 봄이 곧 올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추운 바람이 불며 눈이 흩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어붙은 땅속에서 그 추운 겨울을 얼마나 힘들게 버티어 왔는지 그 누구도 나의 아픔을 모른다. 절망은 나에게 삶의 무게만 더해주어 무릎이 꺾이고 의지마저 앗아가 버렸다. 더 이상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살아가야 할 이유마저 잃었다. 그냥 그 추운 땅속에서 삶을 끝내고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참아낼 수 없었다. 나에겐 손을 내미는 사람도 없고, 함께 아픔을 나눌 이도 없었다.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살고 싶어 졌다. 따스한 봄 햇살을 다시 한번만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대지의 바람의 숨결도, 누군가의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도 듣고 싶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땅속을 뚫고 피어올랐다. 아직은 추운 바람이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따스한 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나의 생명은 이제 따스함 봄바람 속에서 한 많은 숨결을 토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