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것일까? 나에게 생명이 주어짐으로 삶이 시작되고 나의 생명이 끝남으로 삶이 끝나기에 생명은 나의 삶과 항상 함께한다. 나에게 생명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다른 생명체처럼 생명만 보존하다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주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안다면 우리의 생명의 가치는 더 고귀하게 되지 않을까?
그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한다. 사람을 만나며, 지식을 만난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생각지 않았던 많은 일들을 만나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그렇지 못해 오히려 더 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은 그 허무를 극복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정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기에 삶은 버겁다. 나의 능력의 한계에 도달한다. 거기에 삶에 애증이 존재한다. 그러한 삶의 무게에 병들고 지쳐간다. 삶에 대한 무력감과 권태, 덧없음이 나의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래도 극복해야만 한다. 삶의 고통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에 몰아넣기도 한다. 깊은 고통의 공간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내하기 위해 나는 절대 고독 속으로 침잠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 같은 공간에서 주어진 것이라고는 모래와 햇볕밖에 없는 생존의 끝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참나를 알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 나의 생명에 감사함을 느낀다.
<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여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나는 진정한 나를 찾지 못했다. 참나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삶을 알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나의 인생을 끝낼 수가 없기에, 하늘이 나에게 생명을 준 이유를 알아야 하겠기에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절대 공간을 향해 간다. 그곳엔 오로지 고통과 나의 생명만 있을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철저한 무의 공간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 나는 참된 나를 만나고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나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생명이 주어진 이유를 알았다.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야 함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곳에서 죽을 각오를 했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에게 생명이 주어진 이유, 참된 나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이유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생명의 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