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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8. 2022

수레바퀴 아래서

 인생은 수레바퀴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계속해서 굴러가는 인생의 수레바퀴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힘들었던 그만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헤세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한스 기벤란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 있는 아이였다.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남다른지는, 다른 아이들 틈에 끼여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슈바르츠발트의 이 자그마한 마을에서는 여지껏 그러한 인물이 배출된 적이 없었다. 이 좁은 세계 너머로 눈을 돌리거나 영향을 끼칠 만한 사람이 여기서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진지한 눈망울과 영리해 보이는 이마, 그리고 단정한 걸음걸이를 이 소년이 도대체 어디서 물려받았는지 신만이 알리라.” 


  주인공 한스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그는 주위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재능있는 소년이었다. 자연과 벗하며 즐거운 날들을 보내면서도 학교에서는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고 집안의 자랑이기도 했다. 


  “저녁 식탁에 앉은 한스는 많은 친지들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오늘 발행된 주간지를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공지사항>이라는 표제어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올해 우리 마을은 초급 신학교의 입학시험에 단 한 명의 후보자인 한스 기벤라트를 보냈었다. 방금 우리는 그 소년이 2등으로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스는 신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자부심과 환호성으로 터질 지경이었다.”


  한스의 동네에서 유일하게 선발되어 신학교에 2등으로 합격한 그는 미래의 촉망받는 소년이었다. 한스는 삶의 희열을 느꼈다. 자신 스스로 살아있음을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웠고 꿈으로 가득했다. 밝은 미래만이 그의 앞에 놓여있는 듯했다.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쓰러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신학교 입학한 후 한스는 인생의 아픔을 하나씩 알게 되기 시작한다.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복종하며 살아온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길이었는지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가장 친했던 친구였던 헤르만 하일너가 신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것을 보며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어 한스에게는 지나온 모든 세월들이 아무 의미 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수레바퀴 밑에서 자신의 삶이 짓밟아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스는 심한 우울증과 신경과민에 빠져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고, 결국 고향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스는 사과나무 아래 이슬에 젖은 풀밭에 드러누웠다. 온갖 불쾌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불안감, 혼돈에 싸인 상념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럽혀지고,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내일 나는 어찌 될 것인가? 그는 너무나도 낙심하여 자신이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원히 쉬고, 잠들고, 또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머리와 눈도 아팠다. 한스는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었다. 어렴풋한 상념과 추억들, 수치심과 자책감이 음울하게 물결치며 한스를 뒤덮었다. 한스는 큰 소리로 흐느끼며 풀밭에 쓰러졌다.”


  고향으로 돌아와 포기한 신학 대신 과즙을 짜는 일을 하기 시작한 한스는 그곳에서 엠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삶의 아픔의 구덩이에 빠져 있었던 한스에게 엠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는 엠마와의 사람에 가슴이 뛰고 어릴 적 느꼈던 삶의 환희를 다시 갖기 시작하지만, 엠마에게 있어서 한스는 한낱 노리갯감에 불과했었다. 그녀는 한스의 가슴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말도 없이 그를 떠나버리고 만다. 


  “이렇듯 고통과 고독에 내맡겨진 병든 소년 한스에게 위로자의 가면을 쓴 또 다른 유령이 다가왔다. 그리고 점차 그와 친숙하게 되어 급기야는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권총을 구한다거나 숲속 어딘가에 밧줄을 매단다거나 하는 일은 물론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거의 매일같이 한스의 산책길을 따라다녔다. 한스는 조용하고 외딴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죽음의 보금자리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찾아갔다. 머지않아 사람들이 여기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며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스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떠나버렸던 것에 대한 아픔의 상처에서 치유받지 못한다. 그는 삶에 대한 애착을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정신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감당하지 못한다. 삶에 대한 의미를 느끼지 못했고, 인생의 허무함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한스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검푸른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조용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구역질이나 부끄러움이나 괴로움도 모두 그에게서 떠나버렸다. 어둠 속에서 흘러 내려가는 한스의 메마른 몸뚱이 위로 푸른 빛을 띤 차가운 가을밤의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시꺼먼 강물은 그의 손과 머리, 그리고 창백한 입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먹이를 구하려고 나선 겁많은 수달이 교활한 눈초리를 번뜩이며 그의 곁을 소리 없이 지나갔을 뿐, 어느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어느 날 강가에서 강물에 떠내려온 시체로 발견된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수레바퀴는 여린 그의 마음으로 감당해 내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결국 그 수레바퀴에 깔려버리고 만다.


  “줄기를 잘라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이처럼 왕성한 시기에 병들어 상처 입은 영혼 또한 꿈으로 가득 찬 봄날 같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한스 기벤라트도 그랬다.”


  인생의 수레바퀴에 너무 지치다 보면 우리는 그 수레바퀴에 깔리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일은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삶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인생의 수레바퀴는 누구에게나 무거울 수 있다. 그러한 수레바퀴에 깔리기 보다는 그 수레바퀴와 더불어 굴러가면서 더 앞으로 나아가야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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