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May 08. 2022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는 해발 8,848m로 인도, 중국, 네팔의 국경에 우뚝 솟아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수많은 산악인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이 산은 인간의 등정을 결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산의 정확한 높이를 측정하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인도의 측량국장이었던 앤드루 워가 1846년부터 1855년까지 10여 년에 걸친 히말라야 산맥에서의 3각 측량 방법으로 측정한 결과, 이 산이 세계 최고봉임을 증명할 수 있었고, 앤드루 워가 전임자였던 에베레스트의 공적을 기려 이 산의 이름일 ‘에베레스트’로 명명하자고 주장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지구상의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 에베레스트가 된다. 


  20세기 초까지는 에베레스트 정복을 꿈조차 꾸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그리고 인간의 한계의 상징이었던 이 세계 최고봉은 1953년 에드문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 산의 정복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로 전 세계 산악인들은 자신의 평생의 꿈이었던 에베레스트 등반에 대한 자극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최고봉 정복에 대한 성공이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에베레스트 등반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고, 이와 맞물려 이 산의 정복을 도와주는 산악 전문 상업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며 이 회사들은 경제적으로 활황을 맞이한다. 2015년에 개봉된 영화 <에베레스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에베레스트산의 등반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인간의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그 명예욕에 빠진 사람들은 너나없이 산악 회사들과 연계하여 오로지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한다. 물론 이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에 대한 의지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지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로 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과욕일 뿐이다. 그 과욕의 대가는 무엇일까?


  1953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가 정복된 후 40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도전을 이어갔지만, 도전한 사람 중 1/4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평생 산만 올랐던 전문 산악인들이었다.  


  영화에 보면 1년 내 만년설이 뒤덮여있고, 산소조차 희박한, 언제 눈 폭풍이 불지도 모르는 에베레스트 정복을 위해, 등산 경험도 별로 없고, 체력도 도저히 되지도 않는 그러한 일반인들이 당시 평균 연봉의 몇 배가 되는 비용을 산악 회사에 지불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에베레스트 도전에 나선다. 산악 회사는 수많은 사람의 고액 비용으로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등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은 채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등반 지원자들을 거의 받아들인다. 


  영화에서 롭은 전문 등반 산악인으로 일반인들을 인솔해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작한다. 정상 정복 전 눈 폭풍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악 회사에서는 그들의 등반이 성공해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으로 일기예보에 대한 사실을 팀장인 롭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가 에베레스트 정복을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 대신 대원 중 몇 명은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등반인을 도와주다가 팀장인 롭마저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에베레스트 정상 밑에서 만년설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4명의 목숨이 히말라야의 눈 속에 묻혀 버려, 그 시체마저 찾지를 못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했던 그들의 의지는 높이 살만했으나, 그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과욕 그 자체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자 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 나라는 자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들 중 일부는 정말로 에베레스트를 오를만한 능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을까? 물론 일부 일반인의 경우에는 가능한 도전이었지만, 일부는 결코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오직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그 말 한마디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운명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해 보고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을 했던 것일까?


  에베레스트 정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본인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도전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다른 사람들에게 우쭐해질 수 있는 명예욕보다 더 소중한 자신의 목숨과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의지에 대한 위대함을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정말 그다지 의미도 없는 헛된 명예욕과 돈만을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 담보로 잡는 상업 회사들의 탐욕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에베레스트라는 산이 지구상에 없었으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인간 한계에 대한 위대한 도전이라는 말이 결코 위대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수레바퀴 아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