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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18. 2022

진실을 가로막는 자

 대중의 힘은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 수도 있고,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도 있으며, 악마를 천사로, 천사를 악마로, 겁쟁이를 영웅으로 영웅을 배신자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중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은 그러한 것을 잘 알지도 못하며, 그것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고등학교 2학년인 기표와 형우 그리고 그 반 학생들의 대한 이야기로 한 개인이 대중의 힘에 의해 어떻게 몰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볼 때 기표는 구제불능이었다. 그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기보다 선천적인 어떤 포악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냉혈동물처럼 피가 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뱀처럼 작고 징그러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교활한 자들이 가끔 보이는 그런 거짓 착함마저도 나타나 보일 줄 몰랐다. 철저하게 악할 뿐이었다. 평생을 두고 사랑이라는 낱말로 미화될 수 있는 행동거지를 해 보일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물론 그는 자신의 그런 포악성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표정은 항상 독기를 음울하게 깔고 있어 맞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기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낙제를 해서 다시 2학년을 다니는 소위 그 학교의 제일 잘 나가는 아이였다. 2학년 전체 학생들이 그의 존재를 두려워할 정도였고, 그 누구도 기표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비록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그 사회에서는 절대악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신이 매우 거북하게 생각하는 악마란 바로 네가 말한 놈처럼 착함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 순수한 악마지. 그러한 순수한 악마만이 신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신은 마음속으로 괴로운 거야. 그렇기 때문에 신은 결코 악마를 영원히 추방하지는 않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그것을 이용할 뿐이야.”


  그 누구도 기표의 존재가 흔들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그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선생님조차 기표와 관련되어서는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바랐다. 하지만 반장이었던 형우가 기표에게 린치를 당하자, 형우는 대중의 힘을 생각한다. 기표에게 대항할 것은 학생들 중 그 누구도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심지어 선생도 기표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형우는 대중의 힘을 빌려 기표의 몰락을 계획한다. 


  “형우는 기표네 가정 사정을 낱낱이 얘기함으로써 이제까지 우리들의 신화적 존재로 군림해 온 기표의 허상을 빈곤이라는 그 역겨운 것의 한 자락에 붙들어 맨 다음 벌거벗기려 하는 것 같았다. 기표는 판잣집 그 냄새 나는 이둑한 방에서 라면 가락을 허겁지겁 건져 먹는 한 마리 동정받아 마땅한 벌레로 변신되어 나타났다.”


  그 누구도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소위 아킬레스 건이라는 것을 가지지 않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아킬레스 건이 끊어지는 때에 그 개인은 급격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 형우는 기표의 아킬레스 건을 알았다. 또한 그 아킬레스 건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대중의 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은밀히 계획적으로 기표의 아킬레스 건은 그렇게 끊어지게 된다. 


  “그는 서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우리들 앞에 내던졌다. 기표가 바로 밑의 여동생한테 보낸 편지였다. 편지 맨 앞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아킬레스 건이 끊어진 기표는 더 이상 절대적 존재로 군림할 수 없었다. 범접할 수 없던 그의 위치는 급격히 몰락했다. 이제 그는 평범한 존재로서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추락해 버렸다. 비록 허상이었지만 기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허상이었는데, 그것이 사라지자 그는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대중은 그의 존재를 아주 가볍게 진실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그를 지워버렸다. 자신의 허상마저 잃은 기표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회에 속할 수조차 없었다.


  대중의 힘은 무섭다. 그렇지만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대중의 힘을 이용하는 자는 비록 현명해 보일지는 모르나, 그 또한 악마가 아닐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는 허상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배척해야 할 상대는 그런 대중의 힘을 빌어 진실을 가로막는 교활한 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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